“공약 파기했다” 말 바꾼 尹에 간호계 울분
간호사들, 거부권 행사에 ‘부글부글’… 면허 반납 등 단체행동 예고
간호협회 “중재안 수용 의사 없다”
#장면1. 2022년 1월1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는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 간호사 처우 개선 등 정책 제안을 전달 받았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한대로 조정안을 가져오면 국민의힘은 즉시 간호법 제정이 논의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3월4일 국민의힘 대선캠프 홈페이지의 윤석열 공약위키에는 ‘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한 간호법 제정 추진’이 게재됐다.
#장면2. 2022년 1월24일, 윤석열 선거대책본부의 원희룡 정책본부장은 “우리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건 (윤석열) 후보께서 직접 약속을 하셨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 참석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은 “윤석열을 지지한다”면서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장면3. 21대 총선을 반년 가량 앞둔 2019년 10월30일,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는 간호정책선포식에 참석해 “여러분이 가장 원하는 간호법, 여러분들과 열심히 소통하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힘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한 표가 소중해 지지를 호소하던 선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간호계가 들끓는 이유다.
대한간호협회는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간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은 증거와 기록이 차고 넘치는데도,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호법 제정 약속과 공약을 파기했다”며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 숙원이던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또다시 무산될 상황에 놓이자, 간호계는 울분을 토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관계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한 회원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며 눈시울을 붉혔고, 김영경 간협 회장은 동료 회원들에게 안겨 눈물을 흘렸다. 남정자 경남간호사회 회장은 오열을 하던 중 쓰러져 인근 서울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야당도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것과 달리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을 향해 날을 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은 공약 파기 이유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국민에게 공약 파기에 대해서 사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부 여당이 갈등 중재와 합의 처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며 “거부권 행사 명분을 쌓기 위해 국민 분열을 선택했다”고 꼬집었다.
尹 대통령, 국민 건강 앞세워 간호법 제동
반면 정부·여당은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이 크고,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 업무를 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등 쟁점에 대해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간호법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간호사들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귀를 막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의료체계를 보면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여야 간 논의를 통해서 의료법 체계에 대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함께 손질해보자는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간호계를 달래기 위한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초 법안 취지처럼 간호사 처우 개선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 거부권 의결 결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간호법안 제정과 무관하게 4월 발표한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간협 “중재안 수용 못해”… 면허 반납·정당 가입 등 단체행동 거론
그러나 간호사들은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섰다. 간협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그간의 진실을 국민들께 소상히 알릴 것”이라며 “간호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여당이 제시한 ‘간호법 중재안’의 타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명칭 변경 △‘지역사회’ 문구 삭제 △간호조무사 고졸 학력 제한 폐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내용 의료법 존치 등 간호법 제정 반대 측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절충안을 내놨지만, 간협은 원안이 아니면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간협 관계자는 16일 “중재안 수용 의사가 없다”면서 “국회에서 적법한 절차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통과한 법이기 때문에 원안대로 재논의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호계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사상 초유의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간협이 지난 8~14일 등록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5191명 가운데 10만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단체행동 방식으로는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의 경우 64.1%(6만7408명), 간호사가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는 1인 1정당 가입하기 ‘클린정치 캠페인’은 79.6%(8만3772명)가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한편 간협은 17일 오전 간협 회관 앞 단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향후 대응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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