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생각'을 늘어 놓으면 싸우게 되는 이유
시골 아재의 데이트 스킬 '생각과 느낌'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의외로 ‘생각’과 ‘느낌’의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생각’은 머리로, ‘느낌’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정도는 대부분 안다.
예를 들면, 청춘 남녀가 연애할 때는 생각보다는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혹은 여자) 친구가 만나서 맨날 정치나 직장 얘기만 한다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반대로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느낌보다는 생각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삐거덕거려 서로 간에 얽힌 감정을 푸는 자리라면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유효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생각과 느낌의 표현이 주는 효과를 잘 알아서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한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실 나도 40대 초반까지는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 잘 몰랐다.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 바와 같이 나는 우여곡절 끝에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거기 가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느낌’과 ‘생각’의 차이다.
유학 첫 학기, 숙제로 제출했다가 돌려받은 보고서에 “다음부터는 당신의 느낌도 적어보세요”라는 교수의 메모가 적혀있었다.
“아! 보고서에 내 느낌을 적으라는 말이구나.” 그래서 그다음에 제출한 숙제에는 느낌을 왕창 적었다. 그랬더니 “당신의 생각 말고 느낌을 적으세요”라고 다시 메모가 적혀있는 것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교수의 지적이 맞다. 내가 느낌을 적는다고 장황하게 적었던 것은 ‘느낌’이 아니라 ‘생각’이었던 것. 말 그대로 ‘느낌’이라는 것은 ‘기쁘다’ ‘슬프다’ ‘후회스럽다’ ‘창피하다’ 등이 아니던가.
그런데 제출한 보고서에 내가 적었던 내용들은 “그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 사람의 행동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라는 등이었으니 생각이라는 교수의 지적이 맞기는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굳이 내 느낌을 보고서에 적으라고 하지? 그것보다는 내 생각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래서 교수에게 이메일을 썼다.
“당신이 말하는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왜 굳이 내 느낌을 적으라고 하는가. 내 생각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교수로부터 짤막한 답장이 왔다. “우선은 그냥 느낌을 적어보세요. 적다 보면 그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될 거예요.” 이후 나는 그 학기 내내 내 ‘느낌’을 살펴보게 되었고 교수의 말처럼 그것이 왜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듣고 혹시 “그깟 느낌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야”라는 생각이 드시나? 그렇다면 식구나 친구 등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생각’을 길게 늘어놔 보시라. 모르긴 해도 동석한 사람들이 딴생각하거나 얘기가 질어지면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떠날지도 모른다.
반면, 당신이 경험한 느낌을 진솔하게 얘기해 보시라.
“아 글쎄 그 친구가 뭐라고 하는데 그 얘기 듣고 쪽팔려서 혼났어.” “그 착하던 사람이 갑자기 대드는데 겁이 덜컥 나더라고, 눈이 뒤집힌 것이 잘못하면 한 대 맞겠다 싶더라니까.” “식구들이 떠난 텅 빈 집에 혼자 있다 보면 허전해. 한편으로는 자유롭기도 하고.”
당신이 어디서 주워들은 섣부른 정치적 견해나 신문 등에서 본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옮길 때보다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생동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실 당신이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했던 말이나 의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신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 판단이라는 것도 잘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틀에 따른 것으로 당신의 독창성이 발휘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김빠진 맥주처럼 밍밍하고 이야기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다.
반면 당신의 느낌은 진짜다. 그 시점 그 상황에서 어느 누가 당신의 느낌을 대신 느낄 수가 있겠는가. 그 느낌은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해서 일어난 것이다. 유일하고 독창적이다.
그러니 이야기에 생동감이 있고 듣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아! 그 상황에서 당신은 그렇게 느꼈구나.” 자기가 경험한 비슷한 상황을 소환, 비교하면서 공감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그러니 앞으로는 가능하면 김빠진 맥주 같은 얘기보다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 소위 생각으로 포장된 남의 얘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시라는 말이다. 그러면 혹시 그동안 먼 산만 바라보던 대화 상대방의 눈망울이 예전처럼 다시 초롱초롱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서로 생각을 얘기하다 보면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면서 서로 다투고 상처받기 쉽다. 하지만 느낌은 모두가 진짜라서 따질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남이 뭐라 할 것인가.
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진다. 남녀가 서로의 ‘생각’을 늘어놓으며 갈등이 고조되다가 주인공이 어느 순간에 “네가 우물쭈물하며 네 생각을 얘기하지 못할 때마다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 얼마나 불안하면 저럴까 싶어서 심장이 녹아 붙는 것 같았다고.” 생각으로 복잡해진 관계가 ‘느낌’ 표현 하나로 상황 끝.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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