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보다 센 유류분은 재산권 침해?… 헌재, 오늘 공개변론
사망한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속인에게 법정상속분의 일정 부분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해주는 민법상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열린다.
헌재는 17일 오후 2시부터 민법상 유류분 조항이 피상속인과 수증자(증여를 받은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인지가 문제가 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헌재가 유류분 제도와 관련된 사건의 공개변론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변론은 헌재가 병합 심리 중인 2건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사건은 유모씨가 사망 전에 자기보다 먼저 사망한 아들의 배우자(며느리)와 두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했는데, 유씨가 사망한 뒤 딸들이 며느리와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다.
어머니가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생전에 증여를 하지 않았다면, 자기들이 받았을 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유류분에 못 미치는 상속을 받게 되자, 차액 만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두 번째 사건은 김모씨가 생전에 공익 목적의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재산을 기부한 뒤 사망하자. 자녀들이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다.
두 사건의 청구인들은 민사재판 도중 법원에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줄 것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하자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유류분 제도는 유족의 생존권 보호 등을 위해 법정상속분의 2분의 1(배우자, 아들, 딸) 내지 3분의 1(배우자나 자녀가 없을 때 부모와 형제자매)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각 상속인은 피상속인이 남기고 간 재산에서 실제 상속받은 상속액이 유류분에 못 미칠 경우 이를 생전 증여나 유증(유언으로 하는 증여)을 받은 다른 상속인 혹은 제3자에게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각 상속인의 유류분은 생전 증여나 유증이 없었다면 원래 받을 수 있었을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내지 3분의 1이다.
유류분 산정(계산)의 전제가 되는 기초재산에는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증여한 것까지 산입된다. 다만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기간의 제한 없이 모두 기초재산에 포함된다.
헌재는 이번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성을 따져볼 심판대상 조항에 유류분 권리자가 누군지와 각 권리자의 유류분이 법정상속분의 몇 분의 몇인지를 정한 민법 제1112조, 유류분을 계산하는 방법을 정한 제1113조 등 유류분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제1117조를 제외한 나머지 조항 전부를 포함시켰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법상 유류분 제도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오늘날에도 인정될 수 있는지 ▲획일적·일률적인 현행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증여나 유증의 목적이나 성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상속제도의 본질이나 공익에 반하는지 ▲상속개시 전 유류분의 포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없는지 ▲피상속인을 부양하는 등 기여상속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등이다.
법원에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내고, 헌재에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청구인 측은 핵가족화와 평균수명 연장, 여성 지위의 향상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유류분 제도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장남 위주로 유산이 분배돼 상대적으로 부인이나 딸이 제대로 상속을 받지 못했던 때에나 여성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류분 제도가 필요했지, 이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또 청구인 측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가 상속권에 우선해야 하는데,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해 상속권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고, 상속개시 당시 즉 피상속인이 사망했을 당시에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의 대상이 된다는 상속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 현행 제도는 유류분 상실사유를 두고 있지 않아 패륜적인 상속인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에 부합하는 증여까지 유류분반환청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법무부는 아직은 유류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현실에 맞게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다.
또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완전히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동시에 유족들이 생계의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각 양측의 참고인으로 나와 의견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헌재는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접수된 약 40건의 헌법소원 내지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심리 중이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에서 청구인들의 대리인과 이해관계인(법무부), 참고인들의 진술을 들은 뒤 민법상 유류분 조항들의 위헌성을 최종 판단할 계획이다.
최근 하급심 법원에서는 유류분에 관한 민법 조항들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3월 대법원에서는 어머니가 107살이 돼 사망할 때까지 35년 동안 홀로 부양한 자녀에게 어머니가 생전에 증여한 땅을 '부양의 대가'로 봐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서 빼야 한다"며 기계적인 유류분 적용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유류분 제도가 이슈가 됐던 건 2019년 고(故) 구하라씨가 사망했을 때였다. 당시 20여년 전 가출했던 구씨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상속분을 요구하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지만 법적으로 친모의 권리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구씨의 친모는 구씨의 오빠와 4대 6의 비율로 구씨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당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 상속권을 박탈 혹은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논의됐지만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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