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혁명여걸과 회화나무

2023. 5. 1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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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강남으로 이전한 학교들을 다룬 칼럼에 조인숙 건축가께서 종로구 연지동 정신여학교를 1967년부터 중고교 6년간 다녔다며 댓글을 주셨다.

미국 북장로회가 종로5가 현 효제초 자리에 있었던 연지(蓮池)의 서편 구릉지 6만㎡를 매입해 연동교회를 연 것이 1894년, 교회 옆에 정신여학교를 세운 것이 1895년이다.

다만 중심인 정신여학교가 이전한 후 건물과 운동장은 쇠락하고 회화나무도 활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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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지난주 서울 강남으로 이전한 학교들을 다룬 칼럼에 조인숙 건축가께서 종로구 연지동 정신여학교를 1967년부터 중고교 6년간 다녔다며 댓글을 주셨다. 당시 학교 잔디밭에서 전축을 틀고 책을 읽거나 함께 노래 불렀던 추억, 학교 상징이던 500살 회화나무, 옛 교사를 문화재로 등록하려는 노력까지. 실제 이 주변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으로 빼곡하다.

우선 여성독립운동가로 첫손에 꼽는 김마리아(1892~1944) 여사. ‘혁명여걸’ ‘기독교계 항일 여성운동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갖는 그의 위상은 오만원권 신규 발행 시 초상의 주인공으로 거론됐을 정도다. 정신여학교를 나와 일본 도쿄 유학 때 ‘2·8 독립선언’에 참여해 선언서를 국내에 몰래 반입하는 등 3·1운동에 기여하고, 옥고를 치른 후 결성한 애국부인회를 교내에서 비밀리에 이끌었다. 일제의 검문을 피해 비밀문서, 태극기, 국사책을 회화나무 빈 가지 속에 숨긴 일화까지.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도미해서도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귀국 후 일제 감시 속에서 기독교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광복 1년 전 안타깝게 순국한 그는 모교 회화나무 앞에 흉상으로 남았다.

미국 북장로회가 종로5가 현 효제초 자리에 있었던 연지(蓮池)의 서편 구릉지 6만㎡를 매입해 연동교회를 연 것이 1894년, 교회 옆에 정신여학교를 세운 것이 1895년이다. 이후 이 터는 항일의식 가득한 기독교 타운이 됐다. 이준 열사나 이상재 선생, 김상옥 열사가 연동교회 교인이고, 김마리아 여사뿐 아니라 정신여학교 역사 자체가 일제와 맞선 사건의 연속. 현재도 연동교회를 비롯해 기독교회관, 100주년기념관, 여전도회관 등이 있는 이 일대는 기독교의 핵심부다. 다만 중심인 정신여학교가 이전한 후 건물과 운동장은 쇠락하고 회화나무도 활력을 잃었다. 부디 이곳이 치열했던 독립운동과 기독교 정신을 되짚는 공간으로 재탄생해 회화나무가 활력을 되찾길 염원한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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