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현실 벽 높은 ‘맞춤형 교실’… 이주호 부총리의 진짜 적은?

이도경 2023. 5. 1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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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맞춤형 교실’ 개별 교육 정책 아닌
교육자가 추구하는 이상향 가까워
입시 등 각종 정책 연동돼야 가능

고교 내신·수능 등 선행학습 유발
새로운 교육과정 시도 힘들게 해
오래된 사교육 관행 타파가 관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적’이 많은 사람입니다. 진보 교육계 인사 중 그를 좋게 평가하는 이는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교사 집단도 호의적이지 않는 듯합니다. 교육 분야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고 종종 이념 논쟁에 휩싸이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육 개혁’ 드라이브를 걸다 과거처럼 보수 교육계에서조차 점수를 잃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습니다.

이명박정부 시절 그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차관, 교과부 장관을 거치며 5년 내내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했죠. 이 과정에서 많은 ‘안티’를 만들었습니다. 교육부 내부에선 기수 문화를 파괴했습니다. 교육부 사람들은 그가 조직을 망쳐놨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부총리도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교육 수장으로 귀환하는 데 교육부 관료들이 가장 많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이 부총리가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교육계에선 ‘문제적 인물’이었습니다. 교육 시스템 자체에 칼을 대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니 적이 많아지는 건 당연했죠. 자율형사립고를 확대하는 고교 다양화 정책을 밀어붙였고, 교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교원평가제와 교장공모제를 들여와 보수 교원단체의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에도 열을 올려 교수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원형이 됐던 입학사정관제도 도입도 그가 주도했습니다.

‘이주호 시즌2’가 시작된 지 6개월 됐습니다. 그는 교육 시스템을 뜯어고치고픈 열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예고한 정책들을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최고난도 정책은 학생 한명 한명을 위한 맞춤형 교실 구현일 겁니다. 개별 교육 정책이라기보다 많은 교육자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깝습니다. 교육과정과 교원 정책, 입시제도, 학교 공간 정책 등 다양한 교육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돼야 가능할 겁니다. 이 부총리는 AI 등 에듀테크(교육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구현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부총리가 그리는 교실은 대략 이런 모습입니다. 학생에게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업무는 AI가 담당합니다. 학생 수준별로 AI가 학습을 돕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학습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정서적인 부분을 보듬는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끊임없이 학생을 관찰하고 상담해 흥미 있는 분야를 찾아내고 학생 꿈으로 연결되도록 지적·정서적 자극을 주는 일입니다. 해당 분야에서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자극을 주고 다른 쪽으로 흥미가 옮겨가면 맞춤형 자극을 줍니다. 교실은 교사와 AI 등의 도움으로 학생들의 꿈이 디자인되고 무르익는 공간입니다.

학교급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몰두하고 있는 분야’를 가진 학생이 많아집니다.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아이들이 해당 분야 지식을 축적하는 일은 작은 부분일 겁니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스스로 통제하는 힘이 강해 쉽게 좌절하지도 어떤 것에 중독되지도 않습니다. 각종 중독과 과몰입으로부터 내성이 강한 아이로 키우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양한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간극이 큽니다. 이런 교실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선행학습 풍토가 바뀌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국회가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이란 특별법까지 만들어 잡아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중·고교 과정을 앞서 공부하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속수무책이죠. AI가 아무리 고도화돼도 학원에서 중학교 수학을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학교 수업은 하품 나오는 시간일 것입니다. 이런 학생에게 공교육이 맞춤형 교육을 한다며 중학교 과정을 가르칠 수도, 국어·영어 같은 다른 과목을 공부하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선행학습에 패배한 이유는 입시제도 탓이 큽니다. 대입에서 비중이 큰 고교 내신 성적을 볼까요. 고교 내신은 대표적인 선행학습 유발 요인입니다. 옆에 앉은 친구와 점수 경쟁을 하기 때문이죠. 상위권에선 고1 내신이 특히 중요합니다. 고1 내신을 망치면 2~3학년 때 만회하기 어렵습니다. 정부 사교육통계에서 초·중·고교 전체 학년 중 고1 사교육비가 최대로 나오는 이유입니다. 중학교에서도 고1 내신을 위해 많은 사교육비가 투입됩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고교 전체 학년의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관건은 고1 성적입니다. 지난 정부는 2, 3학년만 절대평가로 전환키로 했었습니다. 대입 현장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고1 내신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우려가 컸습니다.

이 부총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전 학년 절대평가가 아니라면 고교학점제가 목표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은 반쪽짜리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전 학년 내신 절대평가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인기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중학교 선행학습 유발 등 부작용 우려가 제기되자 교육부는 결정을 미루고 장고하고 있습니다. 고교 내신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만만치 않게 선행학습을 유발하며, 전국 학생을 한 줄로 세우므로 맞춤형 교육을 가로막는 장벽입니다.

대입 제도와 수능, 학교 평가체계 그리고 그 속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교육과 선행학습 작동 시스템. 이 부총리가 마주한 진짜 적일 겁니다. 꽤 오랜 기간 익숙해져 이제 당연하게 여겨지는 강적. 윤석열정부 ‘3대 개혁’ 중 교육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싸움일 듯합니다. 이 부총리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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