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조선시대 점심시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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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많이 올라 점심값이 부담스럽다.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는다.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이 도시락통을 덜렁덜렁 손에 들고 출근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럿이 둘러앉아 집에서 배달해 온 도시락을 먹으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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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많이 올라 점심값이 부담스럽다.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는다. 오늘날 직장인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조선시대 직장인은 점심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직장인이라야 대궐이나 관청에 근무하는 관원뿐이니 그들의 점심시간을 들여다보자.
대궐에 근무하는 관원은 오전 6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 원칙이다. 조선시대는 하루 두 끼 식사가 일반적이었으니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근했다가 퇴근한 다음 저녁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숙직이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어떻게든 대궐 안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대궐 안에 음식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국왕과 그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곳이다. 근무자를 위한 구내식당 따위는 없다. 간혹 국왕이 음식을 하사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사장님이 점심 사주는 일이 어디 흔한가.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밖에서 먹고 올 수도 없다. 나가봤자 식당도 마땅치 않다. 도시락을 싸는 게 합리적이지만 당시 식재료는 변질되기 쉬웠다.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이 도시락통을 덜렁덜렁 손에 들고 출근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어디서? 집에서.
대궐에 근무하는 관원을 위해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전식(傳食) 또는 전찬(傳餐)이라고 한다. 대개 여종을 시켜 배달했다. 대궐의 경비는 삼엄하지만 음식 배달하는 사람의 출입은 눈감아 준 모양이다. 여종들은 상전의 식사를 머리에 이고 부지런히 대궐을 드나들었다. 마치 도시락을 놓고 간 자녀를 위해 엄마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오는 것처럼. 대궐 경비를 맡은 별감과 금군도 여건이 되면 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우리는 명실상부한 ‘배달의 민족’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대궐을 드나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궐을 지키는 군사들이 식사 배달하는 여종을 희롱했다가 싸움이 나기도 하고, 신원미상의 인물이 배달을 핑계로 대궐에 들어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임금은 병이 나서 밥 한 숟갈 뜨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떠들썩하게 음식을 배달하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중요한 정보도 새어 나갔다. 장희빈의 오라비 장희재의 처형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퍼뜨린 사람은 음식을 배달하는 여종이었다. 감염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집에 전염병 환자가 있어서 집안 사람이 음식을 배달하다가 전염시킬 우려가 있다며 사직을 청한 사례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럿이 둘러앉아 집에서 배달해 온 도시락을 먹으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 도시락이 화려한지 경쟁이 벌어졌다. 백경해의 기록에 따르면 조정 관원들은 한 끼 식사에 가난한 집 한 달 식비를 들였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성대하게 차렸다. 백경해는 평안도 출신으로 어렵사리 조정에 진출한 사람이다. 시골 사람 눈에 서울 관원들의 도시락 경쟁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경쟁적으로 사치를 부리느라 엄청난 식비를 들였지만 배달비는 공짜였다. 배달은 노비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주인 입장에서 노비는 일을 시키지 않으면 손해다. 조선시대의 왕성한 배달 문화는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는 노비의 공짜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달에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은 당연히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배달비를 따로 받기 시작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다만 공짜 배달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나머지 배달하는 사람의 수고를 평가절하하면 곤란하다. 배달은 엄연한 노동이며,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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