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도 주님의 백성”…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간 목사님
<4부> 함께 길을 찾다
⑮ 총체적 복음과 공공신학 실천하다
우리 사회의 외로움 극복 방안으로 다양한 주체의 협력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기관, 시민단체, 복지기관, 종교시설 간의 협력에 기대가 큰 이유는 명확하다. 전국 각지에 소단위의 시민들이 거주하는 곳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여러 주체가 모이는 자리에서 의사결정의 핵심은 공감과 지향성이다. 각 주체에 대한 이해 폭이 넓을수록 효율과 영향력은 높아진다. 목회자가 지역 내 공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주민들의 외로움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국민일보는 10년 넘게 주민 곁을 지켜온 3인방을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만종 목사 - 오빌교회
이진호 목사 - 영종중앙장로교회
표세철 목사 - 주양교회
-목사 직함 외에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어떤 역할을 맡아왔나.
△오만종 목사=서울 강동구에서 사역을 시작한 11년차 개척 목회자다. 읍면동 단위 필수 협의체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지사협) 위원으로 6년여 활동하다가 지난해 민간 위원장이 됐다. 교회 공간을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위해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소장을 맡았다. 이를 계기로 강동문화재단 이사로도 4년째 섬기고 있다.
△이진호 목사=인천 영종도에서 27년째 사역 중이다. 2009년부터 비영리 봉사단체인 ‘나눔과 섬김’을 만들어 매주 홀몸노인을 비롯해 지역 내 어려운 가정에 반찬을 배달한다. 지역 내 크리스천 교사들의 모임인 ‘인천 교육자 선교회’의 지도 목사로도 활동 중이다.
△표세철 목사=2001년 서울 노원구에서 목회를 시작한 뒤 사회복지를 공부해 2006년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현재는 센터장 역할과 함께 주민센터 복지위원를 맡고 있다.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표 목사=지역 협의회 활동을 하다 보면 공공과 민간의 영역 가운데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거기서 생기는 유연함이 활동의 질을 결정짓는다. 목회자와 사회복지사라는 바탕은 그 유연함을 다양한 제안과 조언으로 연결하는 장점이 있다. 협의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다보면 활동이 느슨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적재적소에 지적과 보완이 이뤄져야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오 목사=과거에는 지역 복지의 토양이 다져지지 않아 불가능했지만 시간이 흘러 한국교회에도 공공신학적 관점이 확산되면서 독일의 디아코니아 센터 같은 모습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교회와 공공기관 의료기관 복지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들도 외롭고 고립될 때가 있다. 주민들을 돕는 공무원들에게도 긍휼의 마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목회자로서 공적인 역할을 감당하면서 깨달은 점이다.
△이 목사=영종도에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러 오는 분들이 종종 있다. 주중에도 우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두는 이유가 있다. 한 번은 젊은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얘길 나눠보니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더라. 기도하고 위로해주면서 얘기했다. 이곳에서 마침표 말고 쉼표를 찍어보라고. 그 분은 영종도에서 미장원하면서 아이들 잘 키우고 산다. 이런 사례가 많다. 사례가 많아지면서 교회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지금은 구청에서 먼저 주민들을 위한 협력을 요청해 온다.
-주민들의 필요를 발견하는 과정에 협력의 확장은 필수적인가.
△오 목사=그렇다. 활동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동네 전문가들을 만난다. 그 중 하나가 미용사다. 주민들의 경우 짧게는 월 1회, 길게는 분기에 1회 정도는 미장원을 찾는다. 단골 미장원에서 머리하면서 입 닫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일상과 동네 이야기 속에 삶을 내려놓는다. 미용사가 ‘생활 밀착형 상담사’가 되는 순간이다.
단골 손님과 대화 나누다가 기억력이 많이 감퇴한 걸 느끼고 가족에게 연락해 치매 증상을 발견한 사례도 있고, 우울감이 느껴져 전문 상담을 연결한 사례도 있다. 여전히 배달 음식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동네에선 배달원이 동네 전문가다. 현관문을 열고 나누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위기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 동네 주민이자 직접 음식을 배달하는 중식당 사장님이 성내동 지사협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필요를 민감하게 찾아내는 동네 전문가와 힘을 모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활동해오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이 목사= 교회 안팎의 시선이다. 다들 공감할 것이다. ‘우리 교회도 미자립인데 누굴 돕습니까’ ‘저 교회가 주민을 돕는다고 하는데 저거 언제까지 하나보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깊이 고민하고 기도도 하게 된다. 하지만 지켜가야 할 소명이라 생각하고 멈추면 안 된다. 도울 자원이 부족하면 옆에 있는 또 다른 교회와 손을 모으면 답이 보인다. 거기서 실마리를 찾고 활동을 이어가다보면 교회 밖의 시선도 분명 조금씩 바뀐다.
-지역 속으로 더 들어가 공적 역할을 병행하려는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표 목사=섬기고 나누는 동안 교회에 성도들도 늘었으면 좋겠다 싶은 기대. 그 기대가 없다면 목회자로서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게 수면 위로 올라와 비기독교인들에게 비치면 역효과가 나는 건 한 순간이다. 지역 사회에서 공적 역할을 꾸준히 하는 목사님들을 보면 봉사가 수단이 아니다. 목적이다. 어떤 조건도 없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유지되면 목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에 찾아오는 성도의 열매를 발견할 수 있다.
△오 목사=지역 사회로 더 깊이 들어가기로 결단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을 꼭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목회자 중에 더러는 지역 복지위원, 지사협 위원으로 들어왔다가 6개월도 안 돼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진심을 전하는 데는 시간과 공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앞장서서 뭔가를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려는 자세로 회의에 참석하고 맨 끝자리에 앉아 경청하고 궂은 일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3년만 해보면 목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앞으로의 지향점은.
△표 목사=동장님들과 수시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없던 아이디어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도 많은 위축을 경험했지만 회복을 위해서는 함께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교동협의회 활동이 멈춘 지역도 많은데 다시 활발한 사역을 펼쳐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이 목사=우리 사회의 1인 고령 가구의 외로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외로움 문제도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본다. 기댈 곳 없이 방황하며 고립돼 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은혜의 가교가 돼줘야 한다. 그게 이 시대 교회에 필요한 총체적 복음 아닐까.
△오 목사=자본주의와 성공 제일주의에 매몰된 사회에서 교회가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길 소망한다. 꼭 강단 위 설교가 아니더라도 목회자와 성도들이 지역 돌봄과 사랑 나눔을 통해 사회에 희망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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