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팽개쳐도 돈 나눈다…이혼 한참 뒤 시작된 진흙탕 싸움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신성식 2023. 5. 1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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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후 국민연금 분할 7만건 육박
혼인기간 산정 두고 다툼 치열
쌍방합의·재판확인 등 4개만 제외
"제외인정 사유 확대 검토해볼만"
사진 셔터스톡

서울에 사는 남성 A(65)씨는 얼마 전 "전 배우자가 분할연금을 청구해서 6월부터 연금 10만원이 감액될 예정"이라는 국민연금공단의 통보를 받았다. 부부는 2005년 이혼했지만 2002년부터 별거했다. A씨는 "별거기간은 부부는 아니니 연금을 분할하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남에 사는 B씨도 비슷한 사례이다. 전 배우자가 이혼신고서에 '별거'라고 기재했는데도, 연금공단이 혼인기간에서 빼주지 않고 분할했다. B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은 전 배우자가 별거기간에 가사·육아 분담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B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혼하면 연금이 나뉜다. 이게 분할연금이다. 지난해 이혼 건수는 9만3232건. 분할연금이 성립하려면 ▶혼인기간이 5년 지났고 ▶한쪽이 연금을 받고 있으며 ▶분할하려는 쪽이 63세가 돼야 한다. 혼인기간에 해당하는 연금만 반반 나눈다. 가령 연금이 100만원이고, 혼인기간 해당액이 80만원이면 40만원을 분할한다. 분할연금 수급자는 6만9437명으로 늘었다(국민연금공단 1월 통계). 공무원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1372명이다. 국민연금 분할 수급자의 88.6%가 여성이다. 얼마 안 되는 연금을 쪼개다 보니 평균액이 23만7830원에 불과하다. 53%가 20만원이 안 된다. 대개 이혼한 지 한창 후에 분할 통보를 받는다. 과거 이혼 당시 진흙탕 싸움의 상처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원수 같은 인간'에게 어떡하든 주지 않거나, 어떡하든 많이 받으려 한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별거기간 가사·육아분담 안해 자격 없어"


혼인생활에 별거·가출 같은 우여곡절이 있으면 혼인기간 산정을 두고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전남에 사는 C씨는 국민연금 93만원을 받던 중 전 배우자에게 26만원을 분할했다. 그는 "결혼 파탄의 책임이 저 여자한테 있는데 왜 나누려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분할연금이 신청된 수도권의 연금공단지사에 수차례 항의했고, 상경하려 했다. 연금공단 측이 여러 통로를 통해 겨우 설득했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내가 어렵게 연금보험료를 부어 수급자가 되자 전 남편이 분할을 신청했다. 그 여성은 "저 남자가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내가 보험료를 낸 내 연금인데, 왜 나누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다. 분할연금은 부부가 협력해서 형성한 공동재산을 청산·분배하는 재산권의 일종이라고 본다. 배우자 부정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다. 네 가지만 혼인기간에서 빼준다. ▶법원이 선고한 실종기간 ▶거주불명 등록기간 ▶이혼 당사자가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의한 기간 ▶법원 재판에서 인정한 기간이다.
최근 행정법원 판결 사례를 보자. B씨는 2021년 2월 월 60만원가량의 연금을 받던 중 전 배우자가 62세가 되면서 절반가량을 나눠줬다. B씨는 94년부터 별거했고, 전 배우자가 이혼신고서에 '94년 4월부터 별거'라고 기재한 점 등을 들어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연금공단이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재판장 신명희 부장판사)는 이혼신고서에 별거라 기재돼 있는 점, 94년 11월경부터 전 배우자의 주소가 다른 점, 자녀 둘이 "94~2005년 동거하거나 혼인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전 배우자가 가사·육아 등 부부공동생활에 아무런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들어 94년 4월~2005년 10월을 혼인기간에서 제외했다. 이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의 분할을 취소하라는 판결이었다. 연금공단은 항소했다.

혼인기간 최다 제외사유는 거주불명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 모습. 연합뉴스
복지부 관계자는 "쌍방이 합의한 별거기간이아닌 데다이혼조정조서나 판결문에서 명시적으로 인정한 게 아니어서 일방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양 측을 다 조사하지만, 경찰처럼 사적 영역까지 세세하게 조사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법원 판결과 쌍방 합의만을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연금 분할에 불만이 있으면 이의신청을 거쳐 재심사를 신청한다. 지난해 87건을 심의했다. 10~20%만 인정되는데 지난해 6월 기준 639건만이 인정됐다. 거주불명 등록 385건(60.3%)이 가장 많고, 법원 인정 사례가 230건(36%)이다. 쌍방 합의서는 24건(3.8%)에 불과하다. 이혼할 때 연금 분할까지 고려해서 별거기간 합의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이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체납 보험료를 이혼 후 내 연금이 증가하면 그것도 분할한다. 재판에서 '일체의 재산상 권리를 포기한다'고 합의했어도 분할한다. 과거에 받은 반환일시금의 일부를 이혼하면서 지급했고, 나중에 일시금을 반납(반납제도)해 연금이 올라가도 분할한다. 연금 수령 연령(올해 63세) 전에 사망했다면? 연금 수급권자가 생존해서 연금을 받고 있어야 해서 '분할 불가' 결론이 났다. 양 측이 분할연금을 잘못 이해해서 분할비율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한 경우는 인정됐다. 기초수급자가 "분할연금을 받게 되면서 형편이 좋지 않은 전 배우자가 더 어려워졌고, 내 기초수급액이 깎여서 분할연금을 포기하겠다"고 하자 이건 받아들여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만나면 다툴 수 있고, 과거 폭행 피해 기억을 되살리기 싫어서 만나길 원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나더라도 별거기간 합의서를 작성하기 쉽지 않다"며 "네 가지 인정요건을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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