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꿀벌 200억 마리 폐사 vs 순천만박람회 300만 성황
“꿀벌 폐사에 ‘만만디(慢慢地·천천히)’인 정부 태도가 참말로 답답합니다.”
지난 15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인구(60·전남 강진군)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씨는 “2년째 계속된 꿀벌 폐사로 양봉업계가 망하기 직전인데 정부는 보상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겨울까지 꿀벌이 가득했던 벌통 500개 중 440개가 2월 이후 텅 비었다”고 말했다. 벌통 1개당 1만5000~2만 마리가 사는 만큼 이씨 농장에서만 700만 마리가 증발했다. 그는 “꿀벌 폐사는 농촌 전체와 농업 기반의 6차산업에까지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꿀벌 실종사태로 농촌 지역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꿀벌 폐사의 여파가 양봉 농가에 이어 과수농가와 종묘업계까지 번지고 있다. 이미 경북 상주에선 4만여 참외 농가가 두 배 넘게 이상 값이 오른 벌통을 사느라 100억원가량을 썼다. 꿀벌은 농작물과 식물에 핀 꽃들을 날아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는 주된 곤충이다.
16일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농가 1만8826곳,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없어졌다. 벌통당 1만7000마리씩만 잡아도 전국 꿀벌 중 56%(208억 마리)가 폐사했다. 39만517개 벌통에서 60억 마리가 없어진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피해가 커졌다.
꿀벌 폐사는 늘어났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난화와 응애(진드기), 약제 오용 등이 맞물려 꿀벌이 죽은 것으로 본다. 이들은 또 “개화 시기가 각기 다른 밀원수(蜜源樹) 식재와 양봉산업의 고도화 만이 폐사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꿀벌의 먹이인 산수유·개나리·진달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개화하고 있어서다. 이에 농진청 등은 아카시(개화시기 5월)를 비롯해 회양목(3~5월), 헛개나무(6~7월), 쉬나무(7~8월) 등을 심을 것을 제안했다.
정부의 제안에도 양봉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밀원수는 최소 5~10년이 지나야 효과를 알 수 있다”는 반응이다. 양봉 농가 사이에선 순천만국제박람회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기후변화를 반영해 박람회 일정을 앞당긴 추진력을 양봉산업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순천만정원박람회는 당초 4월 22일이던 개막식을 3주가량 앞당겨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개막식을 치렀다. 조직위 측은 빨라진 봄꽃 개화 시기를 반영한 게 지난 10일 관람객 300만 명 조기 돌파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정부는 지난 11일 ‘지속 가능한 양봉산업 협의체’를 꾸려 꿀벌 문제 해결에 나섰다. 농림부는 484억원을 들여 꿀벌 연구와 밀원수 식재에 착수한다. 고심 끝에 꺼내 든 정부의 카드가 온난화라는 위기에 몰린 꿀벌들을 살릴 만큼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최경호 광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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