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30대만 300만명…폭발 직전 '제도 밖 근로' 해결법 있다 [허은아가 소리내다]
비임금 근로자라는 말은 생경하다. “주말에 축가를 부르러 결혼식에 가고, 평일에는 디자인 작업을 하다가 아니면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언제는 모델을 했다가 쇼호스트를 하기도 했다가 이런 상황이라서 사실 고용 형태라고 말할 수도 없이 생활 일상이 좀 불안한 상황이기는 하죠”라던 어느 ‘N잡’ 청년의 저녁 뉴스 인터뷰가 오히려 쉽게 와 닿는다.
고용주 밑에서 일하지 않고 혼자 일을 찾아 돈을 벌거나 법인화되지 않은 개인사업체를 갖고 직접 경영하는 자영업자, 따로 급여를 받지 않고 자영업자를 돕는 가족 등을 포함한 비임금 근로자는 우리의 삶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일상적 현실이 됐다. 이미 국내 전체 취업자의 네 명 중 한 명이다. 더구나 청년 세대인 30대 비임금 근로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하나의 일거리에서 대부분 최저소득에 미치지 못해 여러 직업을 가져야 하는 소위 ‘N잡러’가 많다.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 등 일부 비임금 근로자의 경우, 노조 활동을 통해서 산재 및 고용보험 적용 등 근로자 보호가 제도적으로 확대되긴 했지만 프리랜서처럼 노조를 구성하기 어렵거나 이미 노조에 가입했지만 기존 노조와 차별되면서도 보다 더 두터운 근로 보호를 원하는 비임금 근로자에게는 기존 시스템이 한계로 느껴진다.
나도 20대 첫 사회생활은 항공사 정규직으로 시작했지만 퇴사 후 컨설팅 개인사업자이자 여러 대학의 프리랜서 강사인 비임금 노동자로 활동했었다. 2000년대 초 프리랜서는 대체로 근로자로서 인정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때 받은 설움과 어려움을 토로하라면 밤을 새울 판이다. 분명 그때보다 일자리 지형 자체가 변했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조류에 따라 노동 구조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비임금 근로자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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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보장하는 근로자 권리 주장 못 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과 노동정책은 여전히 전통적인 임금 근로자를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비임금 근로자는 똑같이 일하는데도 근로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제도 밖’ 근로자이기 때문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근로자의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맑은 눈의 광인’(목적의식이 없고 그저 욕망과 열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서 한편에서는 2030 청년세대 임금 근로자의 권리 주장을 희화화하고 있다.
기존의 정규 노동시장이 급격히 허물어지면서 미래세대에게는 지금까지의 일자리 관념이 이미 해체됐다. 기술 혁신과 자동화는 계속 가속ㆍ심화하고 있고 그 영역에서의 일자리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기업은 노동관계법상 고용주로서의 책임보다는 아웃소싱이나 자동화를 통한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선택하고 있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파편화되고 있다. 근로자들 역시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받아 처리하고 그 보수를 받는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불안하긴 해도 새로워지는 산업 생태계에 따라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고용주 없는 고용’ 시대의 현실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다. 기존의 기업 입장이나 근로자 입장에서의 이분법적이고 배타적 진단과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의 노동관계법ㆍ제도가 이런 근로의 다양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면 비임금 근로자의 ‘노동 소외’는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심각하게 흔드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에서도, 고용보험에서도, 산재보험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청춘을 보낸 수백만 명이 중장년이 되었을 때 우리 공동체는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사업·교육·사회보장까지 하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나는 상생과 공존의 직업공동체, 비임금 근로자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비임금 근로자 ‘협동조합 패치(patch)’ 방식을 제안한다. 협동조합 패치는 기존 협동조합과는 다른 기능이 추가된 협동조합을 의미한다. 수협ㆍ신협 등 일반공제 이외에 새로운 민간 공제사업은 물론 사회적 협동조합만 허용되는 소액대출과 상호부조 사업을 한다. 여기에 더하여 재교육 및 재취업 기회 제공, 사회보험 제공 등의 기능을 갖는다. 기존 협동조합 방식을 비임금 근로자 권익에 맞게 약간 수정하자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기존 노조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이 되려면 노동자들이 노조로부터 받는 이익보다 더 큰 혜택이 있어야 한다.
세계 최대 근로자 협동조합인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1940년대 스페인 바스크 지역 몬드라곤시에서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운동으로 시작한 이 조합은 1956년 가스 스토브와 가스 취사도구를 만들었던 첫 번째 협동조합 ‘울고’가 설립된 이후 제조를 시작으로 은행, 경영 컨설팅, 교육, 사회보장 시스템, 유통 등으로 확장해 거대한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현재 일종의 재벌기업 같은 모습인데, 노동자들이 소유하면서 경영자를 선임해 경영 전체를 관리 감독하는 체제라는 차이가 있다. 이 조합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성장한 협동조합의 대명사로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계약 체결 대행, 사회보험 보장, 대출 지원, 재취업과 재교육, 상부상조 공제 등을 통해 민간의 영역에서 스스로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나 기업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의 확대’로 명시했다. 조합원들은 입사 시 출자금을 내며, 매달 동일 업종 노동자들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1년에 한 번 배당을 받지만 배당금은 출자금 계좌에 쌓아 놓았다가 퇴직 시 수령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직노동자조합원의 재교육과 재배치 기능이고, 실업 기간 중 일정 정도의 급여와 실업수당을 제공한다.
광장 투쟁하는 노조보다 국민 신뢰·지지받을 수 있어
기성 노조의 일상화된 ‘광장 투쟁’ 방식에 대한 일반 국민의 거부감을 감안하면 비임금 근로자들이 협동조합을 통해서 시스템 안에서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게 된다면 국민의 신뢰와 인정, 지지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보수우파 일각에선 일부 사회적 협동조합이 정부 보조금에 의존적이며 이것이 진보나 좌파의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갔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다. 그럼에도 비임금 근로자의 협동조합을 말하는 것은 포장지만 다른 또 하나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협동조합과 달리, 비임금 근로자 ‘협동조합 패치(patch)’는 엄연히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장 참여자이고, 얼마나 수익을 냈느냐로 경영의 성패를 평가받는다. 수익을 내는 궁극적 목적이 조합원의 안정적 고용 환경 유지에 있다는 것이 기업과 다를 뿐이다. 그리고 보조금은 초기 시작 단계에서 말 그대로 보조적 수단이며, 안정화 단계 이후에는 자체 수익에 기반한 자율적 운영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비임금 근로자들이 노조를 구성할지, 아니면 협동조합에 참여할지는 스스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근로기본권과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근로는 근로자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다. 공존과 상생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허은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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