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국회 숙의 아쉽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어 43일 만의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다만 윤 대통령은 양곡법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날 간호법에 대해선 “국회에서 충분한 숙의가 아쉽다”며 여야 간 타협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고, 회의 직후인 낮 12시10분쯤 이를 재가했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간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지 20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이번 간호법안은 이와 같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외교도, 경제·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전기료 인상엔 “탈원전·방만지출로 한전 부실화”
이에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며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준법투쟁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대통령실은 당초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간호법은 보건의료 직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법안인 데다, 내년 총선까지 거야(巨野)의 방송법·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 강행 처리에 계속 거부권 행사로 맞서는 건 고스란히 국정 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의 중재 시도는 야당과 간호협회 측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14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간호사들의 요구에 귀를 막는 게 아니라, 이 법이 시행됐을 때 전체 의료를 관장하는 체계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안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도 현 의료법 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만큼, 논란이 됐던 조무사 관련 부분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 함께 손질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되풀이된 데 대해선 “기본적으로 안타깝다”면서도 “특정 정치 세력이 일방적으로 합의 없이 통과시킨다면 국민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간호법 거부권 행사는 ‘대선 공약 파기’”라며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에게 “헛공약 파기는 민주주의를 파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만약 공약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잘못된 공약을 한 데 대해 당연히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전기요금 5.3% 인상과 관련해 “탈원전과 방만한 지출이 초래한 한전 부실화는 한전채(한전 채권)의 금융시장 교란을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학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이념에 매몰된 국가 정책이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5년 만에 400조원 증가해 총 1000조원을 넘어섰다”며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빚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의 특별대담에서 윤 대통령을 20여 차례 언급하며 ‘윤 대통령과 신뢰가 깊어졌다. 신시대를 열겠다’고 한 데 대해 “한·일 정상회담, 특히 셔틀외교가 복원된 이후에 기시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쪽에서 긍정적인 메시지, 전향적 메시지가 나온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말했다.
권호·현일훈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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