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 투자된 해외 부동산…리스크 속속 가시화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국면에서 우리 금융사는 해외 대체 투자를 빠른 속도로 늘려왔다. 주로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대형 증권사는 자기자본 규모를 잔뜩 키워 해외 주요 상업지구 부동산을 쇼핑하듯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다. 자기자본 규모가 커진 만큼 당장 재무건전성 우려가 두드러지진 않지만 금리 급등과 부동산 침체로 시간이 갈수록 부실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부동산 자산 대부분은 유동성이 떨어진다. 이런 비유동성 자산은 먼저 파는 사람이 가장 적게 손실을 보기 때문에 위기 국면에서 누군가 팔기 시작하면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담보자산 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져 ‘마진콜(증거금 부족 상환 요구)’이 발생할 경우 시장 전반의 유동성 손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우리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실태와 펀드 투자 리스크를 분석하는 배경이다.
(1) 해외 부동산 투자 실태
증권사 대체 투자 잔액 22조
부실자산비율 증가세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재무건전성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해외 대체 투자 잔액은 21조979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약 3% 감소한 수준이다.
해외 대체 투자 잔액은 줄었지만 부실 우려는 줄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43개 증권사 고정이하자산 총액은 2조6408억원으로 전년(2조2666억원)보다 16.5% 증가했다.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총자산 가운데 고정이하자산이 차지하는 비율로, 증권사의 자산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금융당국에서는 채무상환능력 등을 고려해 자산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 기한이 넘어가면 고정이하, 즉 부실자산으로 분류된다. 증권사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이 늘었다는 것은 전체 자산에서 부실자산 비중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증권가의 고정이하자산 증가는 5년 전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43개 증권사의 고정이하자산 총액은 2017년 말(1조33억원)과 비교해 약 2.6배(163%) 늘어났다. 부실자산 비중을 보여주는 고정이하자산비율도 지난해 2015년 이후 처음 3%대에 진입했다. 이는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커진 가운데 공격적으로 해외 대체 투자에 나선 결과로 보인다.
국내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가 커진 만큼 당장 재무건전성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기자본 규모 상위 5개 증권사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업계 평균치인 3%를 밑돈다. 다만, 증권사별로 부실 정도가 엇갈린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전년보다 소폭 줄어든 반면,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은 다소 늘었다. 메리츠증권은 고정이하자산비율이 2.4%로 비교적 높았으나 전년보다는 1.2%포인트가량 줄었다.
다만, 대형사 가운데 신한투자증권은 고정이하자산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지난해 말 기준 신한투자증권의 부실자산비율은 약 5%로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전년 대비 증가율(2.2%포인트)도 두드러졌다. 이는 독일 헤리티지 등 해외 대체 투자 부실로 홍역을 치른 신한투자증권이 부실 여부를 보수적으로 평가하면서 고정이하자산비율이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
미래·대신·한투 등 5개사 3조 투자
시스템 리스크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개별 투자 건에서는 투자자를 불안케 할 요인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국, 유럽 등의 대체 투자 건에서는 국지적 리스크가 속속 현실화하는 중이다.
프랑스 파리와 인근 서부 상업지구인 라데팡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라데팡스의 대표적인 상업용 빌딩인 ‘마중가타워’에 투자한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해 대신증권(CBX타워), 한국투자증권(투어유럽빌딩), 메리츠·NH투자증권(투어에크호빌딩) 등 5개 증권사가 라데팡스지구에 3조원 가까이 투자했다. 이들은 아직도 해당 부동산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최근 이 일대 빌딩 공실률이 대폭 높아져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프랑스 현지 부동산 전문 매체 르모니터에 따르면, 라데팡스지구 평균 공실률은 2019년 4%대에서 올해 초 2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유력 경제일간지 레제코는 지난 2월 말 “라데팡스지구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활성화로 월·금요일에는 사람이 없다”며 “2024년까지 대형 빌딩 3개가 완공될 예정인 만큼 공실률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의 최대 리스크는 ‘전염성’이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비유동성 자산이므로, 이를 매입한 금융사는 자산을 유동화시켜 일부 지분은 펀드나 국내 기관 등에 되판다. 이런 ‘셀다운’ 상품이 우리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져 있다. 실제 프랑스 라데팡스 일대 부동산 투자금에 얽혀 있는 기관이 금융투자업계를 넘어 국내 연기금, 공제회 등 곳곳에 퍼진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9년 매수 당시보다 현지 대출 금리가 큰 폭 뛰었다. 영국 부동산 중개 업체 프렌치프라이빗파이낸스에 따르면, 프랑스의 20년 만기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는 2019년 1%대 중반에서 최고 4%까지 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 기간 기준금리를 0%에서 3.5%로 올렸다. 이들 증권사는 대부분 5년 혹은 7년 만기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기존 보유 지분을 매각하지 못할 경우 2024~2026년 사이 대출을 갈아타는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조달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 자칫 현금흐름이 부채비용을 커버하지 못할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렸던 연기금, 공제회 등 국내 출자자(LP)도 운용사를 통해 현지 리스크 점검에 고삐를 죈다. 국민연금은 런던과 뉴욕 사무소 등을 통해 수시로 해외 대체 투자 관련 동향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운용사에서는 추가 출자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금리 급등으로 대부분 부동산 시세가 하락했다. 부동산 펀드가 상업용 빌딩을 매입할 때 대부분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는데, LTV(매매가액 대비 대출 비율)가 일정 수준을 웃돌 경우 돈을 빌려준 대주단에서 대출 원금의 일부 상환을 요구한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아직 추가 출자 사례가 발행하지는 않았으나 자산 가치 하락으로 LTV 비율 관리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출자 가능성에 대해서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전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요 해외 도시 오피스 공실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자본을 충분히 쌓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된다”면서도 “해외 부동산 부실화 우려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충당금이나 사후관리 등 건전성을 각별히 신경 쓰라는 주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부실이 속속 가시화하면서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자도 가슴을 졸인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전후해 막대한 유동성에 올라타 시장에 판매됐던 다수 펀드의 자산 가치가 뚝뚝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기준가 변동 살펴야
감정평가로 자산 가치 반영
해외 부동산 펀드 부실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는 기준가다. 펀드 기준가는 현재 이 펀드가 보유 중인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보여준다. 가령, 1좌당 기준가 1000원으로 출발한 부동산 펀드의 최근 기준가가 1300원이 됐다고 치자. 이는 환율 변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펀드의 자산 가치가 30%가량 올랐단 의미다. 다만, 기준가가 실제 현지에서 거래되는 부동산 시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 펀드를 예로 들면 이렇다. 이 펀드는 미래에셋이 ‘맵스’ 시리즈로 판매한 해외 부동산 펀드 중 하나다. 2016년 9월 설정해 7년 6개월을 기한으로 운용된다. 맵스9-2호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시티라인 오피스 4개동에 투자한다. 건물을 빌린 임차인은 미국 굴지의 보험사 스테이트팜이다. 2037년까지 중도 해지가 안 되는 장기 계약이다. 펀드 투자자들은 스테이트팜이 내는 임대료로 분배금을 받고 건물 매각 시 원금과 이익을 돌려받는 구조다.
맵스9-2호 펀드의 2020년 1월 2일 기준가는 1128원이다. 이 펀드의 기준가는 등락을 거듭해 2021년 1월 1104원, 2022년 1월 1251원, 2023년 1월 1128원 등으로 변했다. 기준가만 놓고 보면 이 펀드의 자산 가치는 3년 동안 제자리걸음한 것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 펀드의 최근 3년 수익률은 20% 정도다. 펀드 기준가가 제자리걸음했지만 3년 누적 수익률이 20%가 나오는 것은 수익증권 시세에는 누적 분배금(일종의 배당금)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펀드 기준가에 누적 분배금을 더해 계산한 값이 약 20%의 수익률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부 펀드 감정가 곤두박질
대출 등 리파이낸싱 차질
문제는 올해부터다. 부동산 펀드 기준가는 환율 변동과 연 1회 진행하는 감정평가 결과, 그리고 자산운용 결과에 따라 변한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연 1회 현지 업체가 진행하는 감정평가 결과다. 올 들어 미국과 유럽 부동산 시장에서 공실률이 치솟는 등 부실이 확산하면서 자산 재평가로 펀드 기준가가 뚝뚝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미 올 들어 기준가가 전년 대비 급락한 펀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맵스9-2호 펀드도 2022년 1월 1251원이던 기준가가 1년 만에 1128원으로 10%가량 하락했다. 이 펀드 기준가는 2022년 말에는 1330원대를 기록했는데 자산 재평가 뒤 1128원으로 15% 이상 곤두박질쳤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연 1회 현지 감정평가사를 통해 자산 재평가를 실시하는데, 맵스9-2호는 매년 9월 평가해 12월 말 기준가에 반영한다.
이 같은 결과는 진작 예상됐다. 올 들어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과 지역은행 부실 확산 우려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미국 주요 지역 오피스 공실률이 치솟았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CBRE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맵스 펀드가 투자한 댈러스 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평균 24.5%에 달한다.
이뿐 아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자회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관리하는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2호’ 펀드 기준가도 급락세를 보여 투자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펀드 기준가는 지난 4월 27일 전날보다 33% 급락했다. 2019년 출시된 이 펀드는 벨기에 브뤼셀의 ‘투아종도르’ 건물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한다. 벨기에 법무부 산하기관이 임차 중인 우량 건물로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1억4600만유로를 투자했다.
올 들어 금리 급등으로 유럽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겪으면서 이 펀드 자산 가치도 급락세를 보인다. ‘투아종도르’ 건물 감정평가액은 기존 6662만유로에서 4530만유로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펀드의 원화 환산 기준가는 지난 4월 26일 1024원에서 하루 만인 27일 678원으로 급락했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측은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0%에서 3.5%까지 끌어올리면서 부동산 투자 환경이 위축돼 감정평가액이 감소했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평가 손실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자들은 금리 상승에 따른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이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자산 가치 추가 하락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해외 부동산 펀드는 폐쇄형 펀드로 추가 불입이나 중도 환매가 불가능하다.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2호’ 펀드에 투자한 A씨는 “5000만원가량 투자했는데 기준가가 급락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며 “금리 인상만으로 감정가가 저렇게 낮게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부실이 더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털어놨다.
투자자 우려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약정된 운용 기한 만료가 도래하기 전 편입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문제는 올해와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상당수 펀드가 제값을 받고 자산을 매각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 감정평가가 이뤄지면 자산 가격은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펀드 존속 기한에 맞춰 대출을 받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기한 전 펀드 편입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면 대출을 연장하거나 갈아타는 리파이낸싱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금리 상승으로 시장 대출 금리는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국내 해외 부동산 펀드의 대부분은 저금리 국면에서 설정됐다는 점에서 최초 조달금리가 매우 낮다. 이를 고정금리로 묶어놨는데,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조달금리가 많게는 7~9%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
이외 조지아주 애틀란타 소재 오피스(파크센터원)에 투자한 맵스미국11호, 명품 브랜드 구찌 본사를 임차인으로 둔 한국투자뉴욕오피스펀드, 독일 트라이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이지스229호) 등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길에 오른다.
이 가운데 맵스미국11호는 오는 9월 말 투자자에게 이익금(배당금)을 지급하는 데 현금 부담이 생겼다. 기존 임차인인 스테이트팜이 카바나에 임차면적을 10년간 빌려준다는 내용의 전대차 계약을 맺었는데, 카바나가 도중에 계약을 해지하고 퇴거했기 때문이다. 스테이트팜과의 임대차 계약이 오는 2037년까지 유효한 만큼 기한이익상실 사유는 아니지만 투자자들은 고민이 크다. 다음 배당 지급시점은 오는 9월 말로, 맵스미국11호는 기존에 쌓인 현금 재원으로 배당을 지급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9호 (2023.05.17~2023.05.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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