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꿈꾸던 해외 부동산 때문에…‘잠 못 이루는’ 금융사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5. 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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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타고 너도나도 해외 빌딩에 ‘베팅’
‘포스트 코로나’ 공실 늘며 부메랑으로

71조8872억원.

지난해 국내 금융사가 설정한 해외 부동산 펀드 규모다(금융투자협회 통계). 10년 전인 2013년(4조9326억원) 대비 14배 이상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3월 29일 기준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이 72조9326억원으로 늘었다. 매년 해외 부동산 펀드에 유입된 자금만 10조원에 육박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해외 부동산 펀드가 부실화하면 금융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다.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가 급증한 것은 저금리 기조 영향이 크다. 자금 조달이 쉬워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큰돈이 몰려들었다.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오피스 빌딩을 편입한 펀드를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고점을 찍고 내려오면서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LA에서 대형 오피스 빌딩 가스컴퍼니타워와 777타워를 소유한 한 부동산 펀드는 빌딩에 설정된 대출금 7억5000만달러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두 건물은 압류나 매각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 부동산 투자 회사 컬럼비아부동산신탁도 뉴욕 등 오피스 빌딩 7개를 담보로 잡히고 빌린 17억달러 상당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

미국 부동산 투자 회사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보유한 빌딩 공실률이 늘면서 가치가 떨어져 만기 연장, 리파이낸싱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리파이낸싱은 조달한 자금을 갚기 위해 다시 자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맨해튼 오피스 공실률은 18.2%로, 2003년(17.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맨해튼 오피스 공실률 18% 달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오피스 빌딩 가치는 계속 추락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22층짜리 A 오피스 빌딩 가치는 2019년 3억달러에서 최근 6000만달러로 80%가량 급감했다. 부동산 분석 업체 그린스트리트 자료를 봐도 지난 3월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5% 하락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진 데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가운데 은행은 대출 기준을 까다롭게 해 대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사정이 심각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자회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관리하는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2호’ 펀드의 기준 가격은 지난 4월 27일 하루에만 33% 급락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부동산 공모펀드에서도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월 초부터 5월 초까지 최근 3개월간 부동산 공모펀드에서 532억원의 자금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부동산 펀드는 미국,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80%가 집중돼 있다. 대부분 변제 순위가 낮은 지분 투자나 메자닌 대출 형태 고위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로 구성돼 부실화되면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투자자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부동산 담보 채권을 할인 매각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다시 위기설에 휩싸이는 등 해외발 금융 리스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대출 부실화 우려가 크다. 위기 전이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9호 (2023.05.17~2023.05.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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