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으로 끝난 통신 3사 ‘5G’ 마케팅
2019년 5G 개통 이후 통신 3사는 ‘5G 인터넷 속도가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더 빠르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20배 더 빠르다는 ‘진짜’ 5G가 허언이었음이 드러나기까지 4년여 걸렸다. KT와 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도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5G 28㎓ 대역을 포기하면서 5G 마케팅은 사실상 끝났다는 게 통신업계 중론이다. 통신 3사와 정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소비자들만 값비싼 요금제로 덤터기를 썼다는 불만이 확산 중이다.
SKT, 의무구축 사실상 포기
주파수 할당 취소 수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기준 5G 28㎓ 장비를 1605개 설치한 뒤 올 4월까지 단 한 개도 설치하지 않았다. 5월 31일까지 의무구축 대수 1만5000대를 설치하려면 1만3400여대가 더 필요했지만 SK텔레콤은 사실상 구축을 포기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2월 5G 주파수 할당 조건에 관한 이행 점검 결과에 따라 KT와 LG유플러스의 28㎓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을 확정했다. 당시 SK텔레콤은 5월 말까지 1만5000개의 장치 구축을 조건으로 취소 유예를 받았다. 통신업계는 남은 기간 SK텔레콤이 해당 조건을 이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사실상 주파수 할당 취소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본다.
‘진짜’ 5G 서비스가 사실상 무산된 것을 두고는 여러 분석이 제기된다. 기본적으로는 통신 3사와 정부 모두 정교한 예측 역량이 부족해 빚어진 촌극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와 업계 모두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명분에 집착하다 장밋빛 전망을 했다는 것이다.
우선, 5G는 밀리미터파(㎜Wave) 대역을 사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밀리미터파는 30~300㎓의 무선 주파수로, 통신업계에서 밀리미터파는 24㎓ 이상의 주파수 대역을 일컫는다. 밀리미터파 대역은 100㎓ 이하의 대역으로, 대역폭이 넓어지면 네트워크 용량이 증가해 빠른 전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밀리미터파는 물리적 특성상 낮은 주파수에 비해 커버리지가 좁고 장애물 등을 통과하는 투과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때문에 5G 28㎓는 이론상 20Gbps 다운로드 속도까지 가능하지만, 고층 건물 등 장애물이 많은 도심에서는 서비스 구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실험실 속도’라는 비아냥만 남은 셈이 됐다.
무엇보다 5G 설비 투자를 촉진할 수요와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전 세대까지 통신사는 가입자당 월별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소비자 가입을 늘리는 전략을 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로 전환이 본격화한 2G, 음성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진화한 3G, 프리미엄 스마트폰 확산이 두드러졌던 4G 시대에서는 가입자가 큰 폭 늘었다. 5G의 경우 특화망(이음 5G)이나 5G를 통한 FWA(Fixed Wireless Access) 등 제한적으로 일부 서비스가 존재했지만 통신사의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기존 가입자 수가 포화 상태에 도달한 데다 데이터 사용 패턴도 무제한 패키지로 전환됐던 탓에 통신사 설비 투자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통신 3사가 비통신 사업 투자를 늘린 것도 5G 설비 투자를 위축시킨 요인이다. 최근 수년간 통신업계에서는 AI, 플랫폼 비즈니스 등으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확산했다. 기존 통신 사업에서는 투입되는 설비 투자에 비해 비용 회수가 녹록지 않자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들의 5G 서비스 만족도는 매우 낮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발표한 ‘최근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5G 서비스 만족도는 23%로 저조했다. 5G 가입자들이 서비스에 불만족하는 이유로는 ‘LTE와 비슷한 속도(55%)’가 가장 많았다.
결국 정부는 5G 28㎓ 대역에 대한 신규 사업자 유치에 나선다. 정부는 저렴한 비용을 인센티브의 핵심으로 내세운다. 과기정통부는 신규 사업자에게 장비 의무구축 대수를 줄여줄 예정이다. 이외에 저리 대출, 세액 공제(최대 15%), 3년간 독점 주파수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6월까지 주파수 할당 방안 공고를 내고 4분기 신규 사업자를 선정한다. 이를 두고 회의론도 비등하다. 통신업계선 “아무리 정부가 파격적인 혜택을 줘도 B2C 분야서 5G 28㎓ 사업성이 안 나온다”며 “신규 사업자가 등장할지 의문스럽다”는 분위기다.
6G 홍보 나선 통신업계
일각에선 회의론도
이런 가운데, 통신업계는 6G 서비스 관련, 기술 개발·협력 성과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5G로 ‘LTE보다 20배 빠른’ 초고속을 구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6G로 마케팅 역량을 모은 것. 아직 6G 상용화 일정이나 표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주요 선진국은 상용화 시기를 2030년에서 2028년으로 앞당기려 노력 중이다. 한국도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당초 2025년 착수에서 올해로 2년 앞당겨 추진한다.
통신 3사가 최근 잇따라 실증 작업에 나선 기술은 RIS(재구성할 수 있는 지능형 표면)다. 6G에서는 홀로그램, XR(확장현실) 등 특화 서비스를 위해 수백 ㎒(메가헤르츠)에서 수십 ㎓(기가헤르츠)에 이르는 초광대역폭 주파수가 필요하다. 이에 그동안 이동통신에서 사용된 적 없는 ㎔(테라헤르츠) 대역 또한 후보 주파수로 주목받는다. ㎔ 주파수는 가용 대역폭이 넓어 초고속·대용량 데이터 서비스에 적합한 전송 속도를 낼 수 있지만, 파장이 매우 짧다. 전파가 도달하는 거리에 장애물이 있거나 실외 기지국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손실이 발생한다. RIS는 6G 후보 주파수 대역인 ㎔ 대역에서 주파수 커버리지를 확장하는 기술이다.
다만, 이런 통신사 행보를 두고 ‘5G도 제대로 구현 못해 정부의 제재를 받은 마당에 6G 성과를 홍보하는 것이 볼썽사납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통신 3사가 ‘세계 최초 상용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았다던 5G도 ‘공염불’이 됐는데, 사업성이 더욱 불투명하고 표준기술조차 확립되지 않은 6G를 얘기하는 건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5G에서 설비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기술 축적이 미비한 상황에선 6G 구현도 난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RIS 기술을 6G 전반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저궤도 위성통신 같은 신기술을 구현해야 하는데, 비통신 사업에 목매는 현 상황을 보면 6G도 ‘실험실 기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여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책임자는 “서비스 산업 측면에서 5G 활성화 부진의 원인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5G 네트워크 투자를 통해 얻는 수익의 원천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라며 “5G와는 차별화된 6G 핵심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원천 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킬러 서비스의 개발과 비즈니스 모델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9호 (2023.05.17~2023.05.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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