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시간씩 딱 한달만 일해보세요, 좋던 돈도 싫어집니다 [나의 막노동 일지]

나재필 2023. 5.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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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노동 일지 ⑬] 필자가 경험한 저녁이 있는 삶과 일상이 사라진 삶

[나재필 기자]

 세종 베어트리파크 내에 설치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찌푸린 인상과 온몸의 근육을 통해 인간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 나재필
  
노동자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하루를 일하고 하루를 보태 내일을 준비하는 불굴의 인생을 산다. 일은 목적이 아니라 '쉼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나는 반도체공장 증설 현장 입문 당시 한 달에 50공수를 찍은 적이 있다. 1공수는 통상적인 낮 근무 8시간에 받는 일당을 말하는데, 연장-야간 근무는 할증이 붙어 2시간당 0.5 공수를 쳐주며 철야 8시간이면 낮 일당의 두 배인 2공수를 번다. 보통 한달 30일 낮 근무를 하면 30공수인데, 난 거기에다 20공수를 더해 한달 50공수를 받은 것이다. 그때는 오전 7시 전에 출근해서 매일 연장에 야근까지 하고 오후 10시 30분에 퇴근했다. 하루에 15시간 30분 일한 셈이다. 

주말, 휴일도 없었다. 처음엔 돈 벌 생각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그런데 채 1개월을 못 버텼다. 인간의 기본권이 모두 무너져 내리자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이 위협받았다.

여유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일하고, 다시 자고 일어나서 일하는 것을 무한 반복했다. 그렇게 살아가니 죽을 것만 같았다. 돈도 싫었다. 아내와도 대판 싸웠다. 가정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중노동이 되자 가족 관계는 만신창이가 됐다. 몸도 성치 않았고, 머릿속도 온전치 못했다.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뭘 위해 종을 울리지? 내 인생은 뭐지? 아내와 자식들은 무슨 죄야? 이렇게 일만 하다가 진짜 골로 가는 거 아냐?'

물음표가 붙을수록, 의문부호가 늘어날수록 자괴감이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몰아쳤던 중노동 1개월 후, 나는 다른 업체로 이직했다. 보수는 적었으나 주말은 쉬었고 저녁밥을 도란도란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일상이 사라진 삶, 저녁이 있는 삶
 
 나와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이 고속절단기로 파이프를 자르고 있다.
ⓒ 나재필
일과 중노동은 다르다. 일은 인간의 기본권을 유지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고, '중'노동은 기본권을 무시한 일상이 사라진 삶이다. 노동에 '중(重)'이라는 명사 하나가 달랑 붙었을 뿐인데 삶의 질은 상상 이상으로 달라진다.

누구나 노동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그 재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 공식은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구매행위와도 같다. 이는 근시안적인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비롯된다. 죽도록 일해보지 않은 (자칭) 싱크탱크들이 모여서 죽도록 일하라고 만든 정책들이 얼마나 조악하겠는가.

칠레, 호주 등이 주 4일제(40시간)를 추진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유연화'(현재 주 52시간)를 꺼내 들었다가 공분을 사고 있다.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많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우리는 1970년 11월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을 기억한다. 김용균은 2018년 12월11일 새벽 서부발전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몸이 찢겨진 채 발견됐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경기 평택에 있는 SPC 계열사 SPL 제빵 공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 A씨는 사고 당일에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 난 죽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며 과도한 업무 강도를 토로한 바 있다. 2015년부터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후인 2019년 8월까지 전체 산재 노동자 271명 중 98%인 265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1863년 영국 메리 앤 워클리라는 노동자의 죽음을 떠올린다. 당시 20살 여성 메리는 귀족용 무도복을 만드느라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성수기를 맞아 연속 27시간째 일하다 사망했다. 세계 최초의 과로사로 기록된 죽음이다. 직장인들, 특히 MZ세대가 꼽은 최고의 복지는 '월화수목일일일'이다. 석유, 화학, 철강업계에서는 이미 4조2교대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이틀 일하고 이틀 쉰다는 개념이다.

노동시간은 찍어 누르는 식이 아니라 노사 자율에 따라 유연하게 변경하고 활용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해외 우수 사례를 본뜨고 학자들, 관료들이 계산기를 두드려 만든 누더기다. 우리나라는 노동을 부추기는 동시에 노동자를 경시하는 풍토에 젖어있다. 그러니 노동자들도 노동이란 단어만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고 스스로 열등 콤플렉스에 젖는 것 아닌가. 

노동자 업신여기는 순간, 사회 동력은 사그라진다
 
 청주 SK하이닉스 공장 전경.
ⓒ 나재필
 
물론 모든 노동자들이 돈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높게 치는 건 아니다. 특히 반도체공장 건설노동자들의 근로제는 유연하다. 현장에 모인 막일꾼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그저 짧고 굵게 큰돈을 벌고 싶어 한다. 이곳 공사현장의 공기(工期)는 불투명하다. 처음 시작하는 공사는 2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지만, 요즘처럼 '끝물'인 경우엔 몇 개월 내에 일감이 끊긴다.

젊은 노동자나 돈에 목말라 있는 다수의 노동자는 공수가 안 나오면 미련 없이 현장을 떠난다. 노동자는 공사의 질보다는 양을 따진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돈은 되는데 몸이 망가지는 구조다. 그래서 선택지는 하나다. 돈을 위해 몸을 혹사하느냐, 저녁의 삶을 위해 적당히 하느냐다. 강요는 없다. 본인의 선택이다. 쉬고 싶으면 쉬면 된다.

50대 중년이 되면 사실상 사는 재미가 없다. 안 아프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창창한 나이에 주저앉아 쉴 수만은 없으니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직업의 변화를 꾀한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서 자꾸 '딴짓'이라도 하려고 발버둥 친다. 이래도 본전, 저래도 본전이니 '뭐라도 해보자'는 심산이다.

나는 '돈'만을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다. 적당히 벌고, 알맞게 쉬고 싶다. 쉼 없는 노동이란 궁극적으로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란 걸 알기에 조금은 부족해도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고 싶은 것이다. 일과 쉼의 경계가 없으면 결국 일만 하는 노예가 된다.

정부는 신성한 노동을 빵과 혀로 속여서는 안 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자들이지만,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 우린 그냥 억울하게 죽지 않을 권리, 죽지 않을 만큼의 휴식을 원하는 것이다. 제발, 노동의 참가치를 되새겨 설익은 정책으로 농간을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 사회는 가진 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질 수조차 없는 노동자들에 의해서 움직인다.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순간, 사회 동력은 불꽃처럼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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