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발포 책임' 진술 공개... "공식 아닌 직보라인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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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보안부대로부터 받은 자세한 정보를 갖고 사령관실에 보고하러 들어가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보고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당혹스럽고 짜증났었다."
위원회는 당시 육군본부, 보안사, 특전사 소속 군인들의 진술을 종합해 발포 책임자를 전두환으로 잠정 판단하고 "각종 기록을 추가 확보해 면밀히 검토하고 사회관계망분석 등 첨단 조사기법을 동원해 발포책임 소재를 명료하게 규명하겠다"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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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자]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5.18 43주년 앞두고 16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종협 상임위원, 송선태 위원장, 안종철 부위원장. |
ⓒ 소중한 |
"505보안부대로부터 받은 자세한 정보를 갖고 사령관실에 보고하러 들어가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보고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당혹스럽고 짜증났었다."
송선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아래 위원회) 위원장이 전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당시 보안사 보안처 과장이었던 윤아무개씨의 진술이다.
위원회는 5.18 43주년을 앞둔 16일 대국민 보고회를 통해 '발포 책임자'와 관련해 현재까지 조사된 내용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당시 육군본부, 보안사, 특전사 소속 군인들의 진술을 종합해 발포 책임자를 전두환으로 잠정 판단하고 "각종 기록을 추가 확보해 면밀히 검토하고 사회관계망분석 등 첨단 조사기법을 동원해 발포책임 소재를 명료하게 규명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날 위원회가 공개한 육군본부, 보안사, 특전사 소속 군인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5월 20일 야간에 작전참모를 통해 여단장에서 실탄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작전참모로부터 '여단장이 상부에 보고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실탄을 지급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 3공수여단 대대장 김OO 중령
"발포 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선 동감한다. 발포는 보안사 계통에서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박OO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후) 이희성(육군 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은 실권이 없는 사람이었고 참모차장 황영시가 광주 진압작전의 실질적 사령관이었는데 황영시를 움직인 사람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다." - 육군본부 보안부대장 김OO 대령
"광주시위 상황에 대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고하러 갔더니 사령관이 이미 광주 상황에 대해 더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 보안사령부 보안처 과장 윤OO
위원회는 "실탄 지급은 여단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한것이 아니고 상부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정돼 계속 조사 중"이라며 "▲1980년 5월 22일 언론사주 초청 간담회에서 전두환이 실권자처럼 과시한 대목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고위책임자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사실상 실권자로 전두환을 지목한 사실 ▲대법원이 황영시·정호용·주영복·이희성 등을 내란목적살인으로 유죄 판결할 때 전두환을 내란수괴라고 인정한 사실 등은 발포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돼야 하는지 시사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안길정 위원회 4과장은 "광주에 직접 내려가 상주하고 있었던 보안사 직원과 (광주의) 505보안부대에서 사령부에 직접 올리는 보고가 있는데 윤OO 과장은 이를 수합해 보고하는 위치였다"며 "공식 라인이 보고했는데 이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사전에) 상세히 알았다는 건 다른 직보 라인이 여러 통로로 작동했다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정호용 출석 거부... 장세동은 진일보한 진술"
위원회는 보다 윗선 또는 직접적 관계자들의 진술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송 위원장은 "(지난해 숨지기 전) 이희성을 조사했는데 '전두환은 공식 지휘라인에서 비켜 있었다', '내가 책임자다'라고 했다"며 "(그럼에도) 그는 '모두 내가 한 건 아니다'라고 반복해 진술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는 방문조사를 거부했다. 두 차례 서면조사를 했고 위원회 출석을 요구했음에도 거부했다"라며 "서면조사 진술을 보면 여전히 1995~1996년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발포 명령은) 부대장의 권한이지 (나는) 거기에 비켜 있었다', '시집 간 딸을 살피러 간 심정으로 (광주에) 군수지원을 하러 갔을 뿐' 등의 이야기를 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5.18 신군부의 핵심 라인은 물론이고 진압작전 지휘부 중 정확히 자기 책임을 시인한 사람은 없다"라며 "비켜 있던 사람이나 하위직 간부 쪽에서 어느 정도 인정진술이 나온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송 위원장은 "(5.18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장세동은 명백히 조사를 했고 (1995~1996년)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보다 진일보한 진술을 했다"라며 "광주에 갔고 기타 작전에 조언했다는 내용이 (장세동의) 진술에 포함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이날 대국민 보고회를 통해 ▲최소 20곳에서 50여 회 발포 확인 ▲공격헬기 코브라(AH-1)에서 20mm 발칸 연습탄 사격이 이뤄진 정황 발견 ▲노약자, 장애인, 부상자 구호 시민, 집 안의 시민, 일하던 농부 등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까지 살상 ▲광주교도소 구금자 중 집단구타에 의한 사망자 확인 ▲외곽 봉쇄 기간 중 시위 무관 시민과 비무장 시위대를 향한 사격 및 이를 통제하지 않아 살상 행위 지속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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