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보다 싸서 갈아탔는데…"충전비만 50만원" 전기차주 한숨
2021년 1t트럭 전기차를 구입해 화물을 운송하는 신태환(46) 씨는 전기요금 인상 소식에 걱정이 많아졌다. 월수입과 직결되는 전기차 충전요금도 덩달아 오를 가능성이 커져서다. 신씨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뜩이나 일거리가 줄어 월수입이 300만원 대인데, 전국을 누비다 보니 전기차 충전비로만 50만원이 든다”며 “지금보다 충전비가 오르면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이 더 편리한 데다 경제적일 수 있어 다시 내연기관차로 갈아탈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16일 환경부에 따르면 산업부의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환경부도 한국전력공사 등 관계기관과 공공 전기차 충전요금 공동대응반(TF)을 구성하기 위한 사전 논의에 착수했다. 2017년부터 시행해 온 한전의 ‘전기차 충전 요금 할인 특례 제도’가 지난해 6월 종료된 데다, 전기요금도 올랐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에도 해당 TF를 구성해 전기차 충전요금을 ㎾h당 32~38원(약 11~12%) 인상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9월부터 적용해왔다.
업계에선 전기차 충전요금이 100㎾ 이상의 급속충전기 기준 400원대에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이후에도 전기요금이 계속 오른 데다, 앞으로도 인상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50㎾ 급속충전기는 ㎾h당 324.4원, 100㎾ 이상의 급속충전기는 347.2원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10월 ㎾h당 7.4원에 이어 올해도 두 차례에 걸쳐 21.1원 올랐다. 산업부가 내세운 올해 전체 인상 요인은 ㎾h당 51.6원이다. 다만 환경부 관계자는 “작년처럼 TF를 구성해 전기차 충전요금의 적정수준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현재로선 요금 인상 여부나 인상 폭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충전 속도는 느리지만 아파트 단지 등에 비치된 완속충전기를 이용하면 비용을 더 아낄 수 있다. 문제는 화물기사·택시기사와 같은 ‘생계형 전기차주’들에겐 시간이 돈이라는 점이다. 신씨는 “배터리 잔량이 30%인 상태에서 80%까지만 충전하려고 해도 급속충전기 기준 45분이 걸린다”며 “이런 불편을 감수하는 건 경유나 휘발유에 비해 충전요금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인데, 요금 인상으로 전기화물차의 매력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전기차 보조금도 줄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국내 전기차 보조금을 기존 최대 700만원에서 중ㆍ대형 680만원, 소형 이하 580만원 수준으로 줄였다. 다만 보조금을 100% 지원받을 수 있는 차량 가격 기준은 5500만원 미만에서 5700만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했다.
'싼 전기료 혜택 누렸다'는 비판도
하지만 그간 전기차 차주들이 원가 이하의 전기료로 크게 혜택을 봤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는 “전기차 충전요금을 몇원 올린다고 해도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 유지비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더 올릴 여력이 있다”며 “한전 적자 등을 고려하면 올해 전기차 충전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일종의 정상화 과정인 셈”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70㎾h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승용차가 50㎾ 급속충전기로 1회 완충할 경우 요금은 2만2708원 정도로 동급인 내연기관 차량의 42~45% 수준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전력난이 심화하면서 이미 전기차 충전비가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전기 생산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에서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3로 약 161㎞를 주행하려면 18.46유로(약 2만6900원)의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동급인 휘발유 차량 혼다 시빅으로 같은 거리를 달리면 18.31유로(약 2만6600원)로 더 저렴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보조금 축소와 전기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정부의 친환경 전기차 보급 정책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성태 전기차사용자협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전기차 충전요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작년에 이미 한 차례 요금을 올리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며 “‘생계형 전기차주’들은 일거리가 줄고 물가는 올라 한 달에 4~5만원 충전비 부담도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전기차 충전요금 정상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전기차 충전요금을 인상하더라도 택시기사·화물기사와 같이 생계를 위해 전기차 1대만 보유한 경우 유가보조금 형태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충전기 1대당 전기차 수가 2.6대로 한국의 전기차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지만, 도심의 인구밀집도가 높다 보니 ‘충전 낭인’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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