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춧딩이야, 고마워" 인사말에 담긴 깊은 뜻

조영재 2023. 5. 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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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나물 들나물과 함께한 특별한 2박 3일의 순례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영재 기자]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어짐(관계)의 시작입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이어짐은 깊어집니다. 이런 관계성을 깊이 묵상하게 된 계기가 얼마 전 있었습니다. 그 계기는 나물 뜯기였습니다.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간 경북 상주 푸른누리에서는 '알기쉬운 멧나물 들나물' 강좌가 펼쳐졌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 2박 3일의 순례 같았던 배움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배움 마당이 펼쳐진 상주의 푸른누리. 여기서 '누리'라는 말은 '우주'의 우리말입니다. 우리를 맞아준 '푸른누리'는 말 그대로 푸르른 세상이 막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속리산 자락,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선지, 푸른누리의 감나무는 이제 막 잎 손을 내밀었습니다. 메와 들의 봄나물 역시 이제 제철을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 들과 멧자락의 나물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마음닦이를 지도해 주신 스승님. 최한실 선생님
ⓒ 조영재
푸른누리의 원장이신 최한실 선생님은 우선 주변에 터줏대감으로 자리한 나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첫 만남은 늘 정신이 없습니다. 이름을 듣긴 했는데, 소개받은 이름 하나하나는 실타래처럼 뒤엉켜 버렸습니다. 그 실타래는 첫 강의에서 비로소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나물을 가급적 우리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을 우선 불렀습니다.

'홀아비꽃대'도 우리 말 이름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 '놋젓가치'를 먼저 부릅니다. 참취를 '춧딩이'로 소개합니다. 쑥부쟁이 대신 '부지깽이'라 합니다. 단풍취 대신 '개대가리'. 바디나물 대신 '까치발'. 우산나물 말고 '삿갓대가리'. 꿩다리 아닌 '꼬오발'이라 합니다. 백지 말고 '구릿대'. 어수리 말고 '으너리'라 합니다. 뒤에 이야기가 이어지겠지만 이렇게 우리말, 우리이름을 왜 살려야 하는지 무척이나 강조하셨습니다.

보통 행사는 저녁 강의로 일과가 끝나지만 아직 중요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바로 '마음닦이 시간.' 마음 챙김 명상으로 알려진 '위빠사나'를 지도 받았습니다. 너른 마음닦이 방에서 벽을 마주보고 50분간 절로 들고 나가는 숨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겨레말 '고맙습니다'에 이렇게 깊은 뜻이
 
 사람은, 푸른누리의 품에 잠시 안기어 살다 가는 순례자같은 존재가 아닐까?
ⓒ 조영재
 
 나물을 섞어 지져낸 멧나물전부침
ⓒ 조영재
둘째 날은 인근의 괴산과 상주 자락의 산을 올랐습니다. 사진으로만 '눈팅'했던 메의 나물들을 만나고 직접 뜯었습니다. 뜯은 들메의 나물은 전을 부쳤답니다. 무쇠솥 뚜껑에 온가지 나물로 지졌습니다. 전마다 다른 나물이 얽히어 있어 젓가락질마다 다른 맛과 향이 났습니다.

두 번째 강의 시간에 최한실 선생님은 겨레말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보통 우리말을 '국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국어'는 일제가 만든 한자식 조어입니다. 그 조어를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쓰는 거지요. 훈민정음은 '나랏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남북이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한만이 아닌 북한 말까지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겨레말'이라고 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겨레말 중에 정말 되새길 필요가 있는 보기를 들어주셨습니다. 아주 흔하게 쓰는 '고맙다'입니다. 오늘날 '감사하다'라는 한자 조어에 밀려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맙'의 뿌리말은 '곰'이라죠. '곰'은 신, 즉 하늘을 뜻합니다. 결국 '고맙다'는 당신을 하늘처럼 소중히 모신다는 깊은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일제 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이 문물을 한자식 조어로 엄청나게 번역해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이 한자식 조어가 지금 우리 겨레글 뿐 아니라 겨레말까지도 잠식해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일상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오히려 말뜻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겨레말을 되살리는 많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두 번째 밤을 나기 위해 잠자리로 향했습니다. 잠자리는 1인 1실인데, 수도승들이 겨울이나 여름을 보내는 안거식의 독방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독방이 아니었습니다. 내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벌레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요. 이들이 이 방의 임자이고 제가 손님인 셈입니다. 이들과 들숨과 날숨을 나누며 잠들었습니다.

서로 먹여살리는 생명의 그물망
 
 푸른누리를 흐르는 계곡, 하늘과 땅과 물이 선사한 빛잔치
ⓒ 조영재
마지막 날, '푸른 누리'를 품고 있는 인근 산에 올랐습니다. 나물을 뜯을 만큼 뜯다 보니 그제야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의 계곡은 무수한 빛알갱이를 굴리며 흘렀구요. 물이 빚어낸 모래도 덩달아 빛났습니다. 맑고 동그란 물소리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시원한 물을 원 없이 받아 마신 나무들은 녹색 팔을 힘차게 뻗었습니다. 녹색은 하늘과 눈부시게 어울렸습니다. 나물만 찾느라 잘 몰랐는데 정말 '푸른누리'였습니다.

나물을 배운다는 것, 그것은 나와 나물 또 '누리'와의 관계성을 새로 발견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나물은 대개 한해살이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물의 전 인생이 지나갑니다. 겨우내 잠자던 씨앗이 봄기운에 깨어납니다. 꽃이 피는가 싶더니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들어 금새 온 누리에 퍼집니다. 이내 그 어미 나물은 흙이 되지요. 이 모든 과정이 짧은 한 해 동안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이 한해살이 나물들의 파노라마 속에서 죽음의 과정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저 씨앗이 만들어 내는 새 생명들만 빛납니다. 어미 나물의 죽음에는 어떠한 애도도 없습니다. 슬픔의 기색이나 고통스런 표정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져 흔적을 감춥니다. 죽음을 회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은 예정된 죽음을 향해 즐거이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물들의 삶과 죽음은 많은 생명을 먹여 살립니다. 작은 벌레부터, 큰 고라니, 그리고 우리 사람도... 이렇게 뭇 생명은 이어져 있습니다. 현재 나의 나물 뜯기는 이런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물을 뜯다가, 문득 '고맙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나를 먹이고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먹고 힘을 내어서 또 다른 생명들에게 이 힘을 나누겠습니다."

이렇게 3일의 짧은 나물 공부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고마웠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나물 한 아름을 품에 안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 가지 마음으로 나물에게도 인사를 했겠지요. 나물들아,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 할머니들이 개대가리로 불러온 단풍취. 춧딩이(참취)와는 전혀 다른 곳에 산다. 나물들도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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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국귀농운동본부 소식지 '귀농통문' 여름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사진 중 일부는 나물배움길을 함께 벗님이 찍어 준 사진을 허락을 받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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