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판 들추고 제사상 담았다…칸 초청된 한국 영화 두편
“아침에 일어났는데 교수님으로부터 부재중 전화 한 통과 ‘일어나면 전화 달라’는 문자가 와있더라고요. 순간 졸업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너무 무서웠죠.”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로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서정미(28) 감독은 초청 소식을 전해 듣기 직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화과를 졸업한 그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정규과정을 마친 황혜인(30) 감독의 ‘홀’은 올해 칸영화제, 그중에도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이 경쟁하는 ‘라 시네프’(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진출했다. 올해 각국에서 출품된 2000여편 가운데 선정작은 16편뿐. 3등상까지 뽑는 이 부문에서는 2021년 ‘매미’(감독 윤대원)가 2등에 선정돼 한국 작품 첫 수상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서 감독과 황 감독을 출국 전 각각 전화로 만났다.
세계 영화학도 단편 겨루는 부문, 韓 2편 초청
서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할아버지 대(代)부터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시골집이 장손에게 상속되면서 벌어지는 촌극을 25분에 담아낸 블랙 코미디.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씨 자매들은 짐도 제대로 못 챙기고 쫓겨나는 반면, 집에 아무런 애착이 없는 장손은 부동산 수익을 위해 별 고민 없이 외지인에게 집을 팔아버린다. 현대적 가치 앞에 전통적 가부장제가 한없이 무용하고 공허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가부장제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세 자매 중 막내이고, 고모가 다섯 명이다. 이렇게 여성 구성원이 대다수인 환경에서도 가부장제가 수용되는 모습을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 “졸업 작품 소재를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친척들 사이에 유산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거든요. 아들이 유산을 물려받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이런 관습이 왜 아직도 이어지는지 신기하고 이해되지 않는 제 안의 의문을 담아내려 했어요.”
장례식·제사·유골함 등 다소 무거운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이를 가족 간 우스꽝스러운 다툼 속에 풀어내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서 감독은 한국적 요소가 많은 이 작품이 칸에 초청받은 이유를 “외국도 가부장제나 남성 우월주의 같은 의식이 생각보다 견고하고 보편적이구나 싶었다”고 추측했다. “그래도 마지막 제사 장면 같이 중요한 부분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드라마 보조 작가 일에도 재미를 붙였다는 그는 “소재로는 여전히 가족·성장 이야기에 관심 있지만, 그보단 블랙 코미디와 같이 아이러니와 의외성이 돋보이는 장르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적 공간, 어떻게 비칠지 궁금”
황혜인 감독의 ‘홀’은 신입 사회복지사가 점검 차 방문한 남매의 집에서 커다란 맨홀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 아무도 살지 않는 듯 보였던 재개발 구역의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튀어나오는 등 예측 밖 상황이 잇달아 펼쳐지며 24분 내내 긴장감이 팽팽하다. “겁이 많아 항상 최악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습관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황 감독은 이 영화도 “긴장과 불안감으로 가득한 사회 초년생”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전체 구조를 잡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이런 인물을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으로 던져가면서 이야기를 덧붙여 나갔어요. 어떤 거창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과 사람, 상황을 배치해가면서 짧은 순간 안에 불안감과 거북함을 주는 공포 스릴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극의 서스펜스는 주인공이 아이들 방의 오래된 노란 장판을 들추는 순간, 거대한 구멍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극대화된다. 이 맨홀 이미지로 황 감독이 나타내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그는 “배우들에게 각자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연기해달라고 했다”며 “마치 누군가 뒷목을 잡고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라고 떠미는 것 같은 상황이다. 관객들도 각자의 기억을 훑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건물과 집안 분위기가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하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여 있다”고 칸 상영을 앞둔 소감을 털어놨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황 감독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되레 영화에 대한 열의가 커져 다시 영화학도가 됐다고 한다. 이번 칸 초청으로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한이 조금 연장된 기분”이라는 그는 주인공처럼 불안감을 가득 품은 인물, 재개발 구역처럼 인적은 남아있지만 버려지고 잊힌 공간에 마음이 많이 머문다고 한다.
“주변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과 거기에 방치된 사람들에 항상 관심이 기울어요. 다음엔 또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더 긴 공포 스릴러를 완성해보고 싶습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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