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으로 만든 150km 뱀직구…LG 새 필승조 박명근
올 시즌 KBO 등록선수 587명의 평균 신장은 182.5㎝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전체 등록선수의 평균 신장이 176.5㎝였던 점을 감안하면 40년 동안 선수들의 키가 6㎝ 정도 커진 셈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투수들의 체격이다. 올해 KBO에서 뛰고 있는 투수 304명의 평균 신장은 184.3㎝로 야수 283명의 평균 신장 180.5㎝보다 4㎝가량 큰 것으로 조사됐다. 어릴 적부터 키가 큰 유망주들이 대개 투수를 먼저 시작하고, 이러한 경향이 프로 무대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투수가 있다. 바로 LG 트윈스 박명근(19)이다. 올해 프로로 데뷔한 박명근의 KBO 공식 프로필 신장은 174㎝. 투수 평균 신장보다 10㎝나 작지만, 박명근은 “키는 내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친구들처럼 체격이 크지 않았어도 ‘투수는 공만 잘 던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작은 키로도 힘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명근은 라온고 시절 150㎞대의 강속구를 뿌려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오른손 사이드암으로서 변화무쌍한 공을 던져 전국구 유망주로 떠올랐고, 이를 앞세워 18세 이하(U-18)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발탁됐다. 그러나 프로 지명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구위는 뛰어나지만, 체격이 작아 프로에서 오래 활약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실제로 박명근은 2023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일찍 호명되지 못했다. 라운드가 두 바퀴가 돈 다음에서야 LG 유니폼을 입었다. 함께 청소년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서현이나 윤영철, 김민석, 신영우, 김범석, 김정운 등이 1라운드에서 호명된 점을 감안하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그래도 박명근은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인 드래프트 후순위로 지명됐지만 프로에서 더 멋진 활약을 펼치시는 선배님들이 많지 않나. 그렇게 볼 때 3라운드는 더 높은 순서다. 결국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겨우내 구슬땀을 흘렸다. 몸을 키우고 체력을 강화한 박명근은 입단과 함께 코칭스태프로부터 확실히 눈도장을 받았다. LG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2월 미국 스프링캠프로 초청되더니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꾸준히 중용되면서 차세대 불펜으로 낙점됐다. 그리고 개막 후 필승조로 승격해 LG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박명근은 7살 때 처음 찾은 잠실구장에서 야구팬이 됐다. 룰은 잘 몰랐지만, 분위기에 매료돼 흥미를 가지게 됐다. 이어 초등학교 1학년 때 취미반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구리인창중과 라온고를 거치면서 유망주로 성장했다.
라온고 시절 은사인 LG 강봉수 감독은 “(박)명근이가 처음 왔을 때는 키가 지금보다 더 작았고, 공도 훨씬 느렸다. 최고구속이 13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고 제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이어 “체구는 작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고집이 있었다. 본인이 어떻게든 공을 빠르게 던져보려고 이것저것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간결한 팔스윙으로 강속구를 던지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시도로 지금의 뱀직구를 만든 박명근은 올 시즌 깜짝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달 15일까지 16경기에서 1승 2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3.07을 기록하고 LG의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개막 초반 정우영과 고우석 등이 고전한 LG가 상위권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다. 박명근은 “프로 마운드가 아직은 어렵다.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올 때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면서 “신인왕은 아직 욕심 내지 않고 있다. 그저 생각만 하는 정도다. 계속 잘하다 보면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속으로만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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