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 못 쳐도 분량 걱정 없는, '캐릭터 부자' 몬스터즈
[이준목 기자]
"너희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승률이 중요하고."
이대호의 이야기가 '최강 몬스터즈'의 매력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경기 내용이 부진해도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안타를 못치거나 선발로 출전하지 못해도 최소한 방송 분량 걱정은 없다. 최강 몬스터즈가 승리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5월 15일 방송된 JTBC 스포츠 예능 <최강야구>에서는 최강몬스터즈와 휘문고의 2차전 경기가 그려졌다. 앞서 1차전에서 승리는 했지만 경기 내용은 그리 좋지 못했던 몬스터즈는 다소 찜찜한 분위기에서 2차전을 준비했다. 제작진은 현재 전적 2승 1패인 몬스터즈가 10경기 기준으로 2게임만 더 지면(승률 7할) 방출자가 발생한다고 통보하며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경기전 선수단의 화두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는 정근우와 이택근중 과연 누가 먼저 안타를 기록할까였다. 정근우는 새 시즌 시작 이후 '8꽝이'(8타수 무안타), 이택근은 '10꽝이'로(10타수 무안타) 동료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선발 자리조차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택근이 오늘도 안타를 못치면 '삭발'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자, 경쟁자인 정근우는 "(머리 대신) 코를 깎으면 안 되냐"고 견제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선수단은 시즌 첫 안타로 내기를 걸었는데 전원이 정근우에게 몰렸지만, 단장인 장시원 PD만은 유일하게 이택근을 선택했다.
김성근 감독은 정근우를 2번에, 이택근을 9번 타순에 배치하며 다시 기회를 줬다. 선발투수로는 치핵에서 회복한 오주원이 낙점됐다.
또 하나의 변수는 코치의 부재였다. 이광길 수석코치가 방송 해설 일정때문에 휘문고와의 2차전에서 결장했고, 코치 경력이 있는 박용택과 정성훈은 모두 이날 선발엔트리에 포함되며 3루 베이스 코치를 맡을만한 사람이 없었다. 작전야구가 유난히 많은 김성근 감독의 특성상 선수들에게 작전을 전달하는 3루 코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김성근 감독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현역 코치이기도 한 김문호(동원과기대 타격코치)를 낙점했다. 하지만 3루 코치 경험은 없다는 김문호는 김성근 감독의 간단한 사인들도 외우지 못하며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였다.
동료들조차 "사인미스가 제일 많은 애를 코치로?"라며 일제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문호는 경기 직전까지 라커룸에서 사인 연습을 반복했지만 좀처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끝내 머리를 감싸쥐었다.
1차전에서 졌지만 프로 선배들을 상대로 선전하며 자신감을 얻은 휘문고는, 설욕을 다짐하며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시즌 첫 등판이었던 오주원이 초반 투구감각을 찾는데 애를 먹으며 1회부터 실점을 허용했다. 김성근 감독은 만약을 대비하여 1회부터 송승준을 불펜에 대기시켰다. 오주원은 첫 이닝을 간신히 마치고 "변화구 감각이 1도 없다"며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몬스터즈도 반격에 나섰다. 1사후 이홍구의 볼넷과 박재욱의 안타에 이어 이택근이 마침내 '10꽝이'에서 탈출하는 첫 안타를 때려냈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안타 하나로 시즌3을 갈수 있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모두 이택근의 안타를 축하하는 가운데, 경쟁자인 정근우만 유일하게 마냥 웃지못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사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박용택은 내야땅볼이 병살코스로 향하며 '찬물택'이 될 위기에 몰렸으나, 휘문고의 치명적인 송구실책이 나오며 2,3루 주자가 홈을 밟아 몬스터즈가 역전에 성공했다.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정근우는 또다시 내야땅볼에 그쳐 '9꽝이' 행진을 이어가며 또 한번 좌절했다.
몬스터즈는 3회 만루에서 추가득점에 실패했지만, 4회에 또다시 만루 찬스를 잡았다. 이택근이 볼넷을 얻어내고 정근우도 마침내 9꽝이에서 탈출하는 첫 안타를 때려내며 미소를 되찾았다. 정성훈의 볼넷으로 만루 기회를 얻은 몬스터즈는 4번타자 이대호의 타석에서 휘문고의 폭투로 3루주자가 홈을 밟으며 3-1로 앞서가는 추가득점을 뽑아냈다.
휘문고는 이대호를 고의4구로 걸러보내고 정의윤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정의윤의 뜬공 타구가 외야로 깊숙이 뻗지못한 상황에서 3루주자 정근우가 과감하게 태그업을 시도했으나, 2루수의 정확한 송구로 홈에서 아웃되며 병살플레이가 되고 말았다. 첫 안타를 치고도 또다시 찬스를 날려먹은 정근우는 덕아웃으로 돌아오며 슬금슬금 김성근 감독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덩달아 불편해진 3루 베이스 코치 김문호 역시 "제발 좀 바꿔줘라. 못하겠다"고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오주원은 초반 계속해서 휘문고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며 흔들렸지만, 2회 유격수 황영묵, 3회 3루수 정성훈의 등 야수진의 호수비 덕분에 실점 위기를 벗어나며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오주원은 결국 5이닝을 채우며 3-1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투수 조건을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6회초 몬스터즈의 공격에서 우려했던 '문쪽이' 김문호가 결국 사인미스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박용택이 볼넷으로 출루하며 무사 1루 정근우의 타석에서, 김문호가 김성근 감독의 사인을 착각하여 히트앤드런을 지시해버린 것.
설상가상 정근우는 공을 맞추지 못하고 헛스윙을 해버렸고 박용택은 2루 도루를 하다가 아웃당하며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뒤이어 정근우와 정성훈까지 연이어 삼진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김성근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몬스터즈 덕아웃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덕아웃으로 돌아온 김문호는 김성근 감독의 신호가 '노사인'이었던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찬스를 놓친 뒤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몬스터즈는 6회에 두 번째 투수로 신재영을 올렸다. 이미 1차전에서 54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던 신재영은 전날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며 이를 악물었으나 2사후 정성훈의 포구실책으로 휘문고 손진호가 출루하면서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재영은 와일드피치로 주자가 득점권까지 진루한 데 이어 백계렬과 김용현에게 연속 적시타를 내주며 결국 3-3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신재영은 간신히 이닝을 마친 후 "이럴려고 온건 아닌데, 머리를 다 뜯고싶었다. 너무 못하니까.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며 자책했다.
접전 상황에서 몬스터즈는 7회부터 에이스 이대은을 마운드에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대은은 압도적인 구위와 스플리터로 상승세의 휘문고 타선을 찍어눌렀다. 1루수 이대호는 투수와 야수들이 흔들리거나 집중력을 잃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사기를 북돋는 그라운드 위 보컬리더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반격에 나선 몬스터즈는 8회초 박재욱-박용택-정근우에 이어 정성훈까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다시 리드를 잡았다. 휘문고 류한준은 1사 만루의 최대 위기에서 과감한 몸쪽 승부로 4번타자 이대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이대호에게는 몬스터즈 입단 이후 첫 삼진이었다.
하지만 몬스터즈는 5번타자 정의윤이 답답한 경기를 혈을 뚫는 좌중간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점수차를 6-3으로 벌렸다. 이날 경기에서 몬스터즈가 상대 실책이나 볼넷이 아닌 안타로 만들어낸 첫 득점이었다.
승기를 잡은 몬스터즈는 이대은이 8회와 9회를 연이어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휘문고에 기분좋은 2연승을 거뒀다. 시즌 첫 연승을 거둔 몬스터즈는 3승 1패로 승률 7할 5푼을 기록했다.
프로팀(KT-SSG)들과의 접전 이후 치러진 올시즌 첫 고교팀과의 경기는 자칫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방송은 예측불허의 상황들이 속출하는 야구경기만의 흐름과, 이에 반응하는 덕아웃의 모습들을 순간순간 생동감있게 포착해내며 무수한 분량을 뽑아냈다.
안타를 못쳐서 조급해진 선수들의 속마음, 미세한 선택과 실수로 인하여 한순간에 180도 바뀔 수 있는 경기 분위기, 프로 선수들이 위기를 극복해내는 노하우, 선수 못지않게 중요한 코치의 역할까지, 야구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경기 이상으로 수많은 이들의 협업과 숨은 공헌도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스포츠임을 보여준다.
김성근 감독을 비롯하여 김문호, 정근우, 이택근, 이대호 등은 경기중 활약과는 별개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일반적인 야구경기나 중계에서 다 보여줄수 없는 야구팀의 운영과정과, 각자의 개성과 갖춘 캐릭터들은 <최강야구>가 진정성과 웃음을 모두 잡아낼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상대팀인 휘문고 역시 프로 선배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투지를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비마다 수비와 주루에서의 실책이 아쉬웠지만, 타격능력은 오히려 적시타가 거의 없었던 몬스터즈를 압도할 정도였다. 몬스터즈 선수들조차 "얘네들이 더 프로같다" "이정도면 프로 2군 수준"이라며 휘문고 선수들을 극찬했다. 이대호는 경기 후 "너희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승률이 중요하고"라고 농담을 섞여 휘문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칭찬했다.
경기를 마친 김성근 감독은 "배가 뒤집혔다가 다시 상승한 거다. 그게 다 인생이고 야구다.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까"라고 휘문고와의 2연전을 총평하며 "오늘은 도망갔고, 내일은 연습해야 한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주에는 투수왕국 장충고와의 맞대결에서 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는 몬스터즈의 모습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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