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단체 아닌 시민단체입니다…혈세 17억 빼돌린 '그들 수법'
여성 인권과 청소년 보호, 지역 공동체 회복 등을 내세우며 국고보조금을 타낸 시민단체 10곳에 대해 감사원이 조직적 횡령과 사기 및 보조금법 위반, 목적 외 사용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6일 밝혔다. 수사 의뢰 대상자는 73명으로 범죄 추정 금액은 17억 40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엔 세월호 관련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그 돈으로 북한 관련 세미나를 연 시민단체도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인권과 공익을 내세운 시민단체의 보조금 횡령 수법은 범죄 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위 세금계산서와 비용 부풀리기는 물론, 모친과 남편, 며느리, 지인을 허위 직원으로 등록하거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보조금을 타내고, 직원 인건비 통장에 현금카드를 연결해 수억 원을 빼돌린 혐의 등이 적발됐다. 수사 의뢰된 시민단체 대표와 관계자들은 그 돈으로 자식 회사의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집을 사주고, 자동차를 사고 명절 선물을 돌렸으며, 손녀 승마를 위한 말 구매와 유학비에 지출하거나, 골프와 콘도비용 및 개인 카드 대금을 결제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특히 이번 감사 결과엔 안산시로부터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지역 보조금을 받아 북한 제도 탐구 목적 활동비로 사용한 안산청년회도 포함됐다. 안산청년회는 역사와 인문학 독서 토론 목적으로 보조금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김정은 신년사와 김일성 항일 투쟁 등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세월호 관련 보조금으로 지역공동체 회복 사업에 참여한 또 다른 시민단체 A의 대표도 아내가 운영 중인 인쇄업체에 인쇄물 용역을 맡겨 27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났다.
감사원에 적발된 시민단체 중 가장 많은 국고보조금(10억 53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문화 관련 비영리단체 B의 경우 본부장과 회계간사가 공모해 허위 강사료를 지급하고 되돌려 받는 수법을 썼다. 감사원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 동안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방부 보조사업에 참여했고, 남편과 지인 등 19명을 허위 강사로 등록해 356회분의 강사료 1억 1800만원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또, 홈쇼핑에 근무하는 지인과 공모해 강사료 2000만원을 명절 선물구입비로 사용했고, 영상 제작업체에 용역 대금을 지급한 뒤 사업을 취소해 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6억 4700만원을 횡령해 이 중 4억 8500만원을 자녀 회사 운영비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강사 워크숍 명목으로 호텔리조트에 4000만원을 지급한 뒤 대부분을 가족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드러났다.
여성 인권 단체 C의 경우 감사원은 대표 D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여성가족부 보조사업에 참여했음에도 해외여행을 하며 근무한 것처럼 속여 인건비 665만원을 부정수급했다고 밝혔다. 총 근무일 100일 중 제대로 출근한 날은 27일에 불과했다. 동·식물 보전사업 단체 E와 자연환경 보전단체 F는 환경부 보조금을 수령하거나 연구용역에 참여했다. E단체 대표와 회계직원은 직원 인건비 계좌에 현금카드를 연결해 103회에 걸쳐 2억 99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F단체는 허위 연구원을 등록해 1600만원의 인건비를 빼돌린 혐의가 적용됐다.
청소년 보호를 내건 단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소년 보호단체 G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여성가족부 보조사업자로 참여해 전산 용역계약을 허위로 발주해 55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허위 홍보물 제작 계약을 체결한 뒤 대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1억 700여만원의 국고보조금을 타낸 혐의도 적발됐다. 문화와 외교 부분에서도 부정 사례가 드러났다. 재외동포 협력 사업에 참여한 비영리단체 H의 공동대표는 2021년 문체부 보조사업에 참여한 뒤 딸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문화공연 행사비 1200만원을 빼돌렸다. 공공외교 비영리단체 I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외교부 지원금을 받아 인건비 68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한류 산업 참여단체 J의 경우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문체부 간접보조사업에 참여했다. 프로게이머와 협업해 PC 케이스를 개발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이미 해외에 출시된 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1억 10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발견됐다.
감사원 특별조사국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반 년간 감사를 진행했고, 감사 기간을 포함해 3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조사 초기 단계에선 시민 단체의 보조금 부정수급 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보조금은 국가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으로 관리되는데, 감사원 관계자는 “서류상으론 시민단체의 회계 내역이 완벽했다”며 “과거 허위 세금계산서 적발만 찾아냈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전했다. 국고보조금 관련 범죄가 지능화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감사관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될만한 사안을 확인한 뒤 시민단체에 증거자료를 제시하고 나서야, 보조금 부정 수령을 실토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 의뢰 대상이 된 곳 중 일부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는 정부 보조금을 ‘눈먼 돈’으로 인식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려 실시했다”며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 결과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시민단체의 국가보조금 부정 수령 여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공적인 목표가 아닌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보조금을 취하는 행태가 있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선 감사원과 별도로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각 부처 감사관실의 자체 감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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