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고개 든 엔,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글로벌 금융 흔드나
지난해 말부터 엔화 가치 오름세
환차손 피하려 자금 회수 움직임
美 국채 가치 떨어지고 약달러 예고
지난해 3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던 엔화가 올해 들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수정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상승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투자 심리는 위축되는 분위기다. 엔 캐리 자금의 회수가 이뤄지게 되면 미 국채 가치 하락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엔화 강세에 따른 달러 약세로, 가뜩이나 위협받고 있는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위상 변화 속도를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지난해 10월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엔을 넘어서며 32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미국이 지난 한 해간 고강도 긴축(4.75%포인트)에 나서면서 유동성을 빨아들인 것과 달리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막고자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게 됐다. 양국 간의 금리 격차가 확대되자 투자자들의 엔화 매도 행렬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난 같은 해 11월, 엔화는 급작스럽게 강세로 전환됐다. BOJ가 달러를 팔아 엔화를 매수하는 시장 개입을 단행하면서 ‘엔화 가치 높이기’에 나선 것이 변곡점을 만들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BOJ는 ±0.25%로 고정했던 장기금리 변동 폭을 ±0.5%로 상향 조정했다. 일본은 2016년부터 10년물 국채 금리가 일정 수준 금리 폭에서 움직이도록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펼쳐왔다. 변동 폭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금리 인상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게 됐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에 이 같은 조치에 나섰지만 시장은 일련의 정책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시그널에 집중했다. 일본이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신호다.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올해 1월 엔화는 6개월 만에 120엔대에 안착하기도 했다.
특히 BOJ의 수장 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지난 9일 부임함에 따라 그간 진행했던 금융정책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장기간 끌고 온 양적완화 정책 여파로 물가 상승 등 각종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어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책 수정 시점은 우에다 총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다음 달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엔·달러 환율은 지난 2월 이래 소폭 등락을 반복하며 130엔 초·중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엔고에 떠는 글로벌 금융시장… 대규모 투자금 회수 우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엔화 강세를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초저금리의 엔화를 활용해 해외 자산을 사들였던 이들이 엔 캐리 자금을 청산하고 본국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엔 캐리는 제로금리인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이를 달러나 유로로 환전한 뒤 고금리의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들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엔화를 매도하고 가치가 상승하면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한다. 엔 캐리 투자자들은 BOJ가 긴축 기조로 선회해 엔화 가치 상승을 야기할 경우 환차손을 피하고자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BOJ의 금리 인상으로 빠져나갈 일본 자금이 3조달러(약 387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채권 보유국이며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이들이 자금을 회수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연쇄 쇼크가 가해질 수 있다. 특히 신흥국 시장에 치명적이다.
그간 신흥국들은 일본에 비해 높은 금리를 활용해 투자자금을 유치해왔다. 주요 외신은 지난달 12일 "(YCC 정책이 수정될 경우) 일본 투자자들이 막대한 금액을 본국으로 송환해 호주를 비롯해 여러 유로 지역 국가와 미국의 채권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인도네시아 등 일부 신흥 시장도 실질적인 자본 유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 국채 가치의 하락이 예상된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미국 주식과 채권 보유량은 1조5000억달러 이상으로 파악된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3% 수준이다. 일본은 네덜란드·호주의 증시와 채권시장에 각 해당 국가 GDP의 9.5%, 8.3%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했다. 또 프랑스에는 GDP의 7.5% 정도의 자금을 투입했으며 영국과 벨기에에는 각각 4.6%, 4.5% 수준의 자금을 투입했다.
여기에 달러 수요의 감소와 엔화 강세는 달러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 지난 1월 BOJ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BOJ가 YCC를 폐지하거나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에 따라 달러 인덱스는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엔 캐리 투자가 이미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자 일본 투자자들은 달러 차입 비용 증가와 엔화 가치 하락 방어를 이유로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였던 바 있다. 에버코어 ISI의 크리슈나 구하 부회장은 "외환 헤지 비용 상승에 일본 투자자들은 이미 미 국채의 순매수를 멈췄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일은 시장 충격이긴 하나 재앙적 이벤트는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엔 캐리 자금 회수로 인한 시장의 부작용이 생각한 것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거둬들여도 미국의 국채 금리 상승 폭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저 퍼거슨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은 지난해 12월 CNBC에 "(BOJ의 금융 정책 수정이) 전 세계 채권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Fed)가 과도하게 걱정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 건(정책 수정)은 약간의 변화이지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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