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솔로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윤일희 2023. 5. 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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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희경이 쓴 <에이징 솔로>

[윤일희 기자]

 책 <에이징 솔로>
ⓒ 동아시아
20여 년 전 나는 '비혼주의자'도 '결혼주의자'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당시엔 '비혼주의자'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서른에 어렵게 독립을 했고, 가세가 기운 잡의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다. 당시 나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가족뿐 아니라 사회가 나를 보던 시선은 '쯧쯧'이었다.

내 주변에 나 같은 솔로가 없어서 외로웠다.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결혼해 임신과 출산에 이은 독박 육아에 빠져있었기에, 내 고충을 토로할 친구가 없었다. 그때 내게 솔로들의 느슨한 연대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해 본다.

헤매다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돌아보면 결혼은 도피였다.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결혼이 혼자 나이 들어가는 삶보다 더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잘못하면 인생 망하는 하이 리스크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하이 리스크를 짊어진 심리의 근저엔, 정상성에 대한 압박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여자'에 대해 사회가 품은 불온한 혐오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처럼 항복한 여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다. 누가 뭐라 건 '에이징 솔로'(비혼으로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 잘 살아가는 여자들이 분명히 있을 테다. 김희경이 쓴 <에이징 솔로>에 그들이 있었다. 반가웠다.

1인 가구 급증하는 시대, 소수자의 이야기는 아닌 '에이징 솔로' 

저자 김희경은 40~64세의 '에이징 솔로' 19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들을 갈무리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의 병간호라는 난관 앞에 허둥대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아픈 아버지는 딸인 자신이 돌보지만, 솔로인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누가 자신을 돌보아 줄 것인가라는 곤혹스런 물음말이다.

이런 고민 앞에 선 사람이 비단 자신만은 아닐 터, 자신과 같은 '에이징 솔로'를 만나 탐구에 나선다. 어떻게 고립되지 않고 인격적 돌봄을 받으며 늙어갈 것인가. 1인가구가 급증하는 시대적 현상 앞에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소수자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한 '에이징 솔로'들은 '홀로 외롭고 불행하게 나이 든다'는 관념이 거짓말임을 증명하듯, 잘 살아가고 있다. '혼 삶'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다. 돌볼 가족이 없으니 자신의 에너지를 한껏 자신의 욕구와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가족이 우선순위인 여성들과 비교할 수 없는 홀가분함은 "굉장히 큰 자산"으로 작용해, 삶의 기로에 설 때마다 오롯이 자신을 중심에 둔 선택으로 주체적인 삶을 꾸리고 있다. 저자가 인용한 KB 금융지주 경영 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를 살펴봐도, 과거와 달리 나이 들어도 1인 생활 지향에 대한 가치관에 변동이 없고,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혼삶' 특히 여성의 '혼삶'에 대한 연구한 학자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는 우에노 지즈코일 것이다. 저자도 우에노 지즈코의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와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통해, 늙어가는 '혼삶'의 질병과 돌봄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사회는 급증하는 1인 가구의 노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숙고한다.

'외로운 독거노인'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달리, 일본 고령자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보면, 자녀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오히려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들로 외로움과 단절감이 상당히 높았다.

이는 가장 큰 친밀함과 안정을 주는 집단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님을 증명한다. 또한 고령자들의 돌봄을 무조건 시설에 맡기는 회피보다, 방문 간병, 방문 간호, 방문 의료를 촘촘히 배치해 자기 집에 살면서 늙어가며 죽음을 맞도록 돕는 것이 보다 인간적 돌봄임을 강조한다.

누구나 언젠가 혼자가 된다

'에이징 솔로'에게도 혼자 아픈 것은 암담한 일이다. 그러기에 '혼삶'엔 돌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 네트워크가 반드시 친밀한 사람들 간의 연결일 필요는 없다. 해외 사례인 '루시의 천사들'이나 '롯사의 돕는 손'처럼, 돌봄의 당사자가 될 준비만 있다면, '돌봄 품앗이'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솔로인 타인을 서로 돌보는 연대체를 구성할 수 있다.

'에이징 솔로'의 연결을 흥미롭게 제시하는 한국 사회의 공동체로 저자는 전주의 <1인 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 '비비'(비혼들의 비행)를 소개한다. 같은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상 가벼운 땡큐를 주고받는 비혼 공동체'로 시작한 이들은 점차 '에이징 솔로'의 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다년간 연구를 통해 '에이징 솔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권임을 밝힌다.

여기서 주거권이란 단순히 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 서로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이웃, 그리고 갑작스럽게 이동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집"을 포함한다. 내가 이런 주거 안정성으로 연결된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썩 괜찮은 '에이징 솔로'로 살아가지 않을까 낙관하게 된다.

저자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도 경제를 매우 중요한 삶의 구성요소로 꼽았다. 모두 돈벌이를 하고 있고 오래 일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들 역시 주거안정성을 소득보다 더 중요한 삶의 요소로 꼽았다.

'노루목 향기'로 주목을 받았던 비혼 여성 3명의 공동체도 인상적이다. 딱히 작정한 바 없는 시작으로,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끌어안으며 버팀목이 되어 살아가는 노인 여성 3명의 삶은 변주된 '에이징 솔로'의 예를 보여준다. 서로의 지지가 만든 삶의 여유는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마을의 아이들에게 뻗어나가 마을 아이들을 돌보는 공동체 돌봄으로 나아갔다.

단단히 '에이징 솔로'로서의 삶을 구축해가는 이들에게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있다. 삶의 위기에 누가 이들의 삶을 대리해 줄 것인가의 문제다. 오직 가족에게만 법적 행정적 대리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가족 중심주의는 급증하는 비혼 1인 가구들의 삶의 곤경을 손 놓고 바라보는 꼴이다. 외국의 경우 친밀한 관계를 폭넓게 수용해 가족에 준하는 관계로 끌어안고, 삶의 중요한 결정과 돌봄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인정하고 있다.

가족구성연구소는 변화하는 가족 개념에 대응하기 위해 가족인정제도의 변화를 촉구하며 '내가 지정한 1인'이 삶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친구를 생활동반자로 인정받을 길이 없자 딸로 입양한 사례는 법의 무능과 공백을 증명한다.

2020년 여가부에서 행한 <가족 다양성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10명 중 7명이 혼인이나 결혼이 아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구성원을 가족으로 인식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가족을 초월한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부는 무정책으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에이징 솔로'가 아니어도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이 책은 사회에 만연한 '혼삶'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걷어내고 혼자 사는 삶을 긍정하도록 돕는다. 다만 저자도 밝혔듯 이 책의 한계는 명확하다.

'에이징 솔로'들의 개별성보다는 관계를 중심에 두었고 다소 수월한 환경에 속한 솔로들을 다룸으로써 비자발적 솔로들이나 고립된 솔로들 그리고 빈곤층의 솔로들을 다루지 못했다. 이 공백을 메울 진일보한 '에이징 솔로'의 연구가 이어지리라 믿는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솔로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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