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게이트]이번엔 CFD로 터졌다…꼬리가 몸통 흔드는 장외파생시장

박소연 2023. 5. 16. 10: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CFD 반대매매, SG증권발 폭락 사태 뇌관으로 작용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몰라…위험성·레버리지 경계해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국내 증권사 13곳과 외국계 증권사 5곳이 보유한 3400여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대상으로 시세조종과 부정거래,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사태와 유사한 혐의 거래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들 CFD 계좌에서 202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거래된 내역 점검을 내주부터 시작해 2개월 안에 끝낼 계획이다. 통상 이상거래 점검은 3.5개월가량 걸리지만 이번에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내 특별점검팀을 만들어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당국이 장외파생상품 전체를 대상으로 리스크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워런 버핏이 '금융의 대량 살상무기'라고 표현한 파생상품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틈타 국내 자본시장의 잠재 폭탄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자본시장의 리스크를 분산하려고 만든 파생상품이 외려 자본시장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위기는 파생상품에서…장외파생시장 규모 GDP의 8배 수준

파생상품이란 주식·채권·통화 등 기초자산의 가치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선물, 옵션, 주식워런트증권(ELW),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지수연계펀드(ELF), 외환차익거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거래소에서 청산과 결제가 이뤄지는 장내파생상품(선물·옵션 등)은 거래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다. 장외시장은 표준화돼 있지 않은 파생금융상품이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시장 참가자끼리 직접 거래하는 시장이다. 금리스왑과 같은 스왑상품과 선도는 기업이나 은행 계약당사자 간 거래하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옵션은 장내·장외파생상품 모두에 해당한다.

이번 SG증권발 폭락 사태의 뇌관으로 작용한 CFD 계좌의 국내 증권사 거래 잔액은 2조7000억원대로 국내 장외파생상품 거래 잔액인 1경7000조원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국내 장외파생상품 거래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경6716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8배 수준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일평균 9924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상품군별로는 이자율이 1경3419조(80.3%, 이하 전체 거래 잔액 중 비율), 통화 3051조원(18.3%) 순이다. 이처럼 장외파생시장의 98% 이상은 헤지(위험 회피) 용도다. 주로 금융사나 기관 투자자가 투자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활용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CFD처럼 이를 제외한 상품에서 터지기 마련이다.

금융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거래에서도 주의를 기울였다. 예컨대 국내 A 은행은 지난해 4분기 '대고객 장외파생상품 취급 제한' 결정을 내리고 장외파생상품 판매를 제한했다. 금리와 환율이 치솟자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금융사·금융사, 금융사·기업 등의 개별 거래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관리가 어려운 장외파생상품은 당국의 감시망 밖에 있다. 금융사·금융사, 금융사·기업 등의 개별 거래다. 파생상품은 본래 용도가 헤지(위험회피)다. 주로 금융사나 기관 투자자가 투자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활용한다.

다만 파생상품을 헤지 용도가 투기대상이라고 여기는 투자자들이 문제다. 한번에 큰 돈을 벌겠다며 뛰어들었다가 불공정거래를 일삼기도 한다. 당국은 개인이 섣불리 참여하지 못하게 진입장벽을 높이고 레버리지를 줄여 투기를 억제해왔고, 업계는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면 유동성이 줄어 시장이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장외파생상품은 거래소와 같은 공적인 기구를 통한 계약이 아니라 금융사와 회사, 금융사와 금융사 등 개별적으로 체결하는 파생상품이다. 장외파생상품은 일대일 계약이므로 계약 당사자들만의 비밀스러운 거래이며, 거래 상대방에 대한 위험이 수반된다. 누군가 실물거래 바탕이 아닌,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위한 지렛대로 남용하면 워런 버핏이 경고한 것처럼 금융시장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B기관 최고투자책임자는 "위기 때는 항상 파생이 문제가 된다"라며 "파생은 도무지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알 수가 없고 한 번 터지면 줄줄이 고구마처럼 올라오기 때문에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파생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레버리지(차입)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도 거액을 거래할 수 있다. 파생상품은 거래액의 일부만 계약금으로 걸고 거액을 거래할 수 있다. 그만큼 남의 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키우는 효과가 높다. 베팅만 잘 하면 단기에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대신 실패하면 거액을 물어내야 해서 그만큼 위험도 크다.

1998년 월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헤지펀드 LTCM의 파산은 장외파생상품 거래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극도로 높인 투자행태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역시 높은 레버리지가 문제였다. 이번 SG증권발 폭락 사태를 유발한 CFD 역시 투자자가 주식 등 기초자산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 가격의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파생상품으로, 최대 2.5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장외파생시장 규모는 파악 가능…위험 요인 살펴봐야

한국의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거래소 중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주식 현물시장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파생상품 시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은 우리 증시가 투기판 내지 외국인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방증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파생상품 시장을 겨냥해 한탕을 노린 사건도 잇따랐다. 2010년 11월 발생한 '도이치 옵션 쇼크'와 그 이듬해 5월에 터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사제 폭탄' 사건 등이 그것이다. 주가가 내려갈수록 이익을 보는 파생상품에 투자한 이들이 주식시장 폭락을 유도한 사건들이다.

파생시장이 '투기장'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당국은 규제 강화에 힘써왔다. 긍정적인 부분은 현재 국내 장외파생시장 규모가 파악된다는 점이다. 2021년 4월 개설된 한국거래소 거래정보저장소(TR)를 통해서다. TR는 장외파생상품 거래 세부 정보를 수집·보관·관리하는 금융시장 인프라다. 현재 국내외 은행·증권·보험·자산운용사 등 275개 이용사가 등록해 보고한다.

C기관 최고투자책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파생이 터져도 금액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라며 "그래도 이번 CFD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바로 피해금액을 파악하는 것을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D증권사 최고경영자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주가 조작 세력에 있지만 당국이 시스템적인 관리를 못한 것, 금융사들이 고객 관리를 디테일하게 하지 못한 점도 깊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과거 CFD 위험성을 금융당국이 파악하고 나서도 재발을 막지 못한 것은 이번 사태가 주가 조작 세력이 유발한 단발성 사고가 아니라 당국의 파생상품 관리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E기관 최고투자책임자는 "파생시장은 헤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개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 지나치게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것은 금융시장 불안 상황에서 공멸의 길이 될 수 있다"라며 "금융사 프라이빗뱅커(PB)들이나 사모펀드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파생상품을 권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당국은 위험 요인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투자자의 국내외 파생상품 투자 현황'에 따르면 파생상품시장의 개인 투자규모는 2017년 2조2156억원, 2018년 2조8340억원, 2019년 2조8095억원, 2020년 3조9633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파생시장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선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 문턱을 대폭 높이고, 매매 주체 관련 정보 수집과 모니터링 강화, 불공정거래 차단을 위한 거래소 시장 감시시스템 개선 등을 주문했다.

※이번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자본시장 질서에 경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가 진상파악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투자피해 사례와 함께 라덕연 측의 주가조작 및 자산은닉 정황, 다우데이터·서울가스 대주주의 대량매도 관련 내막 등 어떤 내용의 제보든 환영합니다(jebo1@asiae.co.kr). 아시아경제는 투명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