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계 거물' 쟈니, 미성년자 성폭행 공식 첫 사과

윤현 2023. 5. 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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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기타가와 성폭력 의혹에 사과 및 대책 마련... 성폭력 인정·조사는 '회피'

[윤현 기자]

 '쟈니즈 사무소' 창립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의 생전 성폭력 의혹에 대한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 쟈니즈 사장의 사과 영상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
ⓒ NHK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가 창립자인 고(故) 쟈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1931~2019)의 남성 연습생 성폭력을 사과했다. 

기타가와의 조카인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 쟈니즈 사장은 15일 공개한 영상에서 "창업자의 성폭력 문제로 세상을 크게 소란스럽게 한 것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에게 깊이 사죄한다"라며 "관계자와 팬들에게 실망과 불안을 끼친 것도 사죄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매우 늦었지만, 여러 곳에서 받은 질문은 앞으로 서면으로 회답하겠다"라고 덧붙였다.

1962년 쟈니즈를 설립해 '스마프'와 '아라시'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을 키워낸 기타가와는 일본 연예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다가 2019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러나 기타가와는 생전에 남성 연습생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일본 주류 언론이 외면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3월 '일본 J팝의 포식자'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타와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하면서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논란으로 떠올랐다(관련 기사: 부모님 옆방서 자는데... '소년 성 착취' 연예계 제왕의 민낯).

남성 연습생 성 착취한 일본 연예계 '제왕'
 
 '쟈니즈 사무소' 창립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의 생전 성폭력 의혹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
ⓒ NHK
 
BBC의 취재에 응한 쟈니즈 연습생 출신의 한 남성은 15세 때 기타가와의 집에 초청받았다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타가와가 '목욕 좀 하라'면서 자신을 마치 인형처럼 온몸을 씻겨줬다"라고 말했고, 기타가와가 자신에게 구강성교도 했다고 밝혔다.

쟈니즈 출신 가수인 가우안 오카모토도 지난달 일본 주재 외신 특파원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어 쟈니즈에 소속이던 2012∼2016년에 기타가와로부터 15∼20회 정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관련 기사: 일본 아이돌 제왕, 또 성폭력 폭로 "15∼20회 당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결국 쟈니즈의 후지시마 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기타가와가 사망했기 때문에 고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라며 "억측에 의한 비방 등 2차 피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를 부탁드린다"라며 성폭력 의혹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또한 "당시 나는 회사의 (사장이 아니라) 임원으로서 경영책임은 없으나,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라며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경영 개혁과 사내 인식 개선을 위해 (사장직에서) 물러나지는 않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롭게 사외이사를 초빙해 경영 체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의사나 상담사의 지도 아래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을 위한 창구를 열겠다"라며 "재발을 방지하고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대응책을 내놓았다. 

후지시마 사장은 "피해를 호소하는 가우안을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라며 "피해를 호소하거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성실히 만나겠다"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수십 년 전 고발했으나 외면"... 전문가들 "사회구조 바꿔야"
 
  '쟈니즈 사무소' 창립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의 성폭력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아사히신문> 갈무리
ⓒ 아사히신문
 
그러나 쟈니즈 소속 아이돌 팬들이 요구했던 제3자위원회를 통한 조사는 거부했다. 후지시마 사장은 "조사 단계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조사받는 사람의 심리를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쟈니즈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은 처음이다. 반면에 피해자와 언론의 반응은 차갑다. 1980년대 후반 기타가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인 히라모토 아야야는 후지시마 사장의 사과 영상에 대해 "자신은 몰랐다면서 도망치려고 한다"라며 "수십 년 전에도 이 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6일 사설에서 후지시마 사장이 기타가와가 고인이라는 이유로 성폭력 의혹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에 대해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용기있게 목소리를 낸 사람들의 고발이 의문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3자위원회가 없는 사내 조사는 한계가 있다"라며 "이런 문제는 제3자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성폭력은 심각한 인권 침해인데, 오히려 피해를 호소한 사람이 배척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라며 "그런 사회 인식을 바꾸고, 미디어도 이번 문제를 제대로 파헤쳤는지 반성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후지타 유코 도쿄대 대학원 사회학 교수도 <아사히신문>에 "후지시마 사장이 말한 이번 사태의 문제점은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하고 있던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확실하게 경위를 밝혀 재발 방지에 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예기획사를 넘어 연예계 및 미디어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이 오랫동안 근절되지 않았던 구조를 밝혀내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회견에서 "민간 법인의 공표 내용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하는 것은 삼가겠다"라면서도 "성폭력은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상대의 동의 없는 성적 행위가 성폭행이라는 인식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피해자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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