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무사 편든 당정… 허탈한 간호사들 카드는 ‘근로시간 준수’

김은빈 2023. 5. 1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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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간호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
복지부 “간호법, 의료인 신뢰 저해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
간호계 ‘단체행동’ 경고… “근로시간 준수 등 검토”
대한간호협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문화마당에서 손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둘로 쪼개졌다. 의사, 간호조무사와 간호사가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는 형국이다. 중재해야 할 정부는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하며 의사와 간호조무사의 편에 섰다. 

간호계는 한쪽 의견만 수용한 정부·여당에 분노를 표했다. 이들은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해 ‘의료공백’ 우려도 제기된다.

거부권 행사 유력… 대통령실·복지부·여당 한목소리로 “제정 반대”

16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안이 상정될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 4일 정부로 이송된 간호법은 오는 19일까지 법안 공포 또는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14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간호법안은 보건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심대하다”며 거부권 행사를 공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공감을 표했다. 이날 참석한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간호법에 대해 “어느 일방의 이익만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법은 법안 내용을 떠나 절차에 있어 이해관계자들 입장이 충분히 수용되지 못했다”면서 “직역 간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 행사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간호법안이 공포돼선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5일 브리핑을 통해 “간호법안은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께 내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여당, 간호법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여당의 표결 불참 속에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내용을 별도로 분리한 것으로,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적정 노동시간 확보 등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는 간호법을 반대하며 △의료인 간 갈등을 확산시킬 수 있고, △‘지역사회’ 문구로 인해 의료기관 밖에서의 간호 업무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또 △직역 간 업무를 침해할 우려가 크고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은 차별적이며 △사회적 갈등이 있는 만큼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간호사들이 돌봄 서비스 영역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간호법 제1조에 ‘지역사회’ 표현을 사용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조 장관은 “의료법에 없는 지역사회 문구가 간호법안에만 처음으로 포함됐다”며 “지역사회에서의 의료·돌봄 업무가 간호사만의 영역으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보건의료 단체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선 의료기관·요양기관 등 각 직역간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에 학력 상한을 둔 점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 장관은 “특성화고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나오면 자격시험을 바로 볼 수 있지만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 전문대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일정 기간 학원에서 수강을 해야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면서 “이러한 입법 예는 다른 직역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국민의 직업 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비롯한 간호사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한 단식돌입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효상 기자

“왜 한쪽 의견만 듣나”… 선거 때와 다른 당에 허탈한 간호계

정치권이 의사·간호조무사의 손을 들어주자, 간호계는 격분했다. 대한간호협회는 15일 “복지부의 간호법에 대한 입장 브리핑은 지금까지 간호법 반대단체가 주장했던 가짜뉴스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정책을 이끌어갈 정부가 이처럼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흑색선전에 근거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수 있는지 경악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들은 “2020년 4월10일 제21대 총선 때 정책협약서를 통해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 또 2022년 3월4일, 대선캠프 홈페이지 ‘윤석열 공약위키’에 간호법 제정을 포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여당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간협은 “간호조무사 학력 조항은 복지부가 지난 2012년에 신설했는데도 뻔뻔하게 간호법 탓인 양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보건의료인 간 신뢰·협업을 저해하는 것도 간호법이 이유가 아니라 법정 의료인력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의료기관과 이에 대한 관리감독 직무를 소홀히 한 복지부에 있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간호사들은 정부·여당이 약속을 어겼다며  ‘단체행동’을 결의했다. 간협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회원 대상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인원 10만5191명 중 98.6%(10만3743명)가 ‘적극적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단체행동 수위는 논의 중이다. 간협 관계자는 1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한의사협회 등처럼 국민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파업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근로시간 준수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간협이 단체행동 카드로 ‘근로시간 준수’를 쓸 경우 초과근무가 잦은 간호사 업무 특성상 부분파업과 비슷한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보건의료 정책을 이끄는 복지부가 사실관계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간호법 반대단체가 내놓은 걸 그대로 발표했다”면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인데, 태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비난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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