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뺑뺑이 도는 ‘요즘 초딩’은 행복할까

임지혜 2023.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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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학교-학원-집’ 반복 생활이 일상
올해 아동행복지수, 4점 만점에 1.66점
학원 안간다면… “푹 자고 싶어요” “친구랑 놀고 싶어요”
지난 11일 경기 안양 평촌 학원가에서 학원을 가는 학생들 옆에 숙제를 하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평일에 멍때리고 학원 다니다 보면 어느새 금요일이에요.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가서 아쉬워요.”

요즘 아이들은 행복할까. 쿠키뉴스가 지난 11일 수도권 학원가에서 만난 초등학생 7명에게 ‘현재 행복한가’라고 물었다. 7명 중 6명이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다. ‘행복하다’고 한 1명은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던 초등 4학년 김모양은 최근 부모에게 수학학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놀 친구가 없어졌다. 앞선 기사인 ‘부모들도 모르는 ‘요즘 초딩’의 진짜 하루’에서 만난 초등생 상당수가 하교 후 학원 뺑뺑이와 숙제로 늦은 밤이 돼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학생들의 평일 루틴은 ‘집-학교-학원-집’이었다. 지난 10~11일 초등학교 하교 시간 서울 강남 대치동, 목동 학원가와 경기도 안양 평촌 학원가 인근의 놀이터를 둘러봤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학원이 끝날 시간인 저녁 8시가 돼서야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 놀이터(왼쪽)에는 놀고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반면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 7시30분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는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놀러 나왔다.   사진=임지혜 기자

아이들이 생각하는 삶의 낙은 ‘친구’였다. 학교와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김양은 “집에 있어도 혼자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라며 “차라리 학원 뺑뺑이를 하는 게 더 즐겁다. 학원에선 친구라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 학원가 인근에 거주하는 전모(10)양은 평일 중 금요일을 가장 기다린다. 전양은 “금요일엔 놀이터에 친구들이 정말 많다. 금요일만큼은 정말 늦게까지 놀다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아동·청소년 8명 중 7명은 과도한 공부량과 부족한 수면·운동량 등으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11월22일~12월29일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22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아동행복지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6.9%(1940명)의 행복지수가 ‘하(下)’로 집계됐다. 올해 아동행복지수는 4점 만점에 1.66점으로 지난해 1.70점보다 낮아졌다.

재단에 따르면 행복지수가 낮은 아이들에겐 ‘늦은 수면’, ‘집콕’, ‘저녁 혼밥’, ‘온라인 여가활동’ 등 몇 가지 공통되는 특징이 있었다. 재단 관계자는 “네 가지 생활영역에서 적절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불행감을 느낀다”며 “아이들의 수면권과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경기 안양 평촌 학원가 도로에 줄 서 있는 학원 차량들.   사진=임지혜 기자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으면 하고 싶은 행동으로 ‘휴식’과 ‘놀이’를 꼽았다. 초등 3학년 배모군은 “학원을 정말 가기 싫을 때가 있다. 너무 힘들어서 (학원을) 그만두고 쉬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김양과 친구인 신모(11)양은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했다. “잠을 푹 자고 싶다”고 답한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왜 학원에 갈까. 김양 등 4명은 “(학원을) 가야 해서 간다”라고 답했다. 부모 지시의 영향이 컸다.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서 학원비를 해주신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부모님을 위해”라는 대답도 있었다.

“꿈을 위한 시간과 비용 투자”라는 의견도 있었다. 언어 계열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이양은 “통역사 꿈을 위해 수업받고 싶다고 부모님께 먼저 얘기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너무 빡빡한 일정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라 참았다”며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사진=임지혜 기자

전문가는 학생 상당수가 학습된 무기력을 겪는다고 진단했다. ‘주변 친구들도 전부 학원에 다닌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경현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겸 한국 문화 및 사회 문제 심리학회장은 “(요즘 초등학생들은) 주변 친구 대부분 학원에 다니는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학생 스스로 대안을 제시할 시간 여유가 없고, 비교 대상을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습된 무기력은 개인의 욕구와 동기를 떨어뜨리고 불안이나 우울 부정적 정서를 초래할 수 있다.

많은 부모가 돌봄이나 성적 향상을 위해 사교육을 선택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크다. 전문가는 내적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왕 할 사교육이면, 아이가 스스로 수업의 이유를 찾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남들도 다 하니까 내일부터 바이올린 수업을 듣자”는 말을 들은 A학생과 친구의 바이올린 수업을 구경하거나, 부모와 바이올린 음악회를 다니면서 스스로 관심이 높아져 바이올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B학생이 있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B학생이 더 즐겁게 수업을 배우고 실력도 빨리 는다. 서 교수는 “내적동기가 없는 아이들은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라며 “성적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보상은 내적동기를 약화하는 부정적 요인”이라고 귀띔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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