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더 중요한 건 행정부다

정승훈 2023. 5. 16.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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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뉴스를 보다 눈가를 훔쳤다.

동생보다 한 살 많다는 형이 은결(8)군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에 울컥했다가 할머니가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라며 통곡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젖었다.

스쿨존 내 사고가 이어지면서 입법부에 더 강력한 법 제정을, 사법부에 무거운 형 선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강력한 법 제정도, 무거운 형 선고도 중요하지만 사고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정부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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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일요일 저녁 뉴스를 보다 눈가를 훔쳤다. 동생보다 한 살 많다는 형이 은결(8)군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에 울컥했다가 할머니가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라며 통곡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젖었다. 학교에 들렀다 떠나는 운구차를 향해 친구들과 이웃 주민들이 흰 손수건을 흔들며 “은결아 잘 가”라고 인사하는 모습은 애써 외면해야 했다.

은결군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우회전하는 시내버스에 치였다. 사고 당시 버스가 반드시 보고 따라야 했던 우회전 신호등에는 멈춤 표시인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스쿨존 내 사고가 이어지면서 입법부에 더 강력한 법 제정을, 사법부에 무거운 형 선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 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일명 ‘민식이법’)은 스쿨존 무인단속 장비 설치 의무화와 사고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동안 “(형량이) 너무 과중하고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는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스쿨존 교통사고는 줄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스쿨존 교통사고는 2019년 567건에서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 483건으로 줄었지만 2021년 523건, 2022년 481건을 기록했다. 그저 늘지 않았을 뿐 뚜렷한 감소 효과는 없었다.

치사 사고 가해자에게 사형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치상 사고 가해자에게 3년 이상 2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을 더 강화하면 스쿨존 교통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까. 강력한 법 제정도, 무거운 형 선고도 중요하지만 사고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정부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누구나 법을 위반하면 제재받는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미국에서 생활해본 이들은 주변에서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면 “‘STOP’ 사인이 있는 곳에선 무조건 차를 세워야 한다”고 아는 체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행인은 물론 다른 차량이 보이지 않는 교차로에서도 거의 모든 운전자가 차량을 멈췄다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운전자들이 한국 운전자들보다 바쁘지 않아서, 의식 수준이 높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제도나 법을 실행하고 강제하는 힘이 우리나라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어디선가 경찰과 CCTV가 지켜보고 있어서 ‘STOP’ 사인을 위반하면 예외 없이 벌금과 벌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운전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수 없게 나만 걸렸다’거나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더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스쿨존 교통사고가 줄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 스쿨존 내 속도위반에 대한 과태료 부과만큼 일시정지, 신호위반 등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철저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사고를 내지 않아도 스쿨존에서 무언가 위반을 한 운전자에게는 반드시 벌금과 벌점이 부과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일상 속 불편과 불합리 해소’를 위한 정책과제라며 스쿨존 내 시간대별로 제한속도의 탄력적 운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경찰은 이미 제한속도의 탄력적 적용기준 정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도 제한속도를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정부와 정치인의 핑계는 국민이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국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이 정도 불편을 감수할 수 없다면 내일은 또 누군가의 아들딸이 피해자가 될 것이다. 단서 조항과 예외 조항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법·제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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