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형 확장억제, 최선의 길을 선택했다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미 양국이 미국의 강화된 확장억제 공약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선 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단일권한(Sole Authority)’ 원칙하에서 핵무기의 최종 사용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데 전략핵잠수함(SSBN)이나 전략자산 정례적 배치만으로 확실한 핵 보복이 가능할 것인가, 정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이상의 강력한 확장억제가 보장될 것인가, 여전히 불투명한 확장억제 공약에 기대어 자체 핵무장이라는 카드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닌가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확장억제’ 본연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이러한 논란은 대부분 지나치게 지엽적인 면에 집착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확장억제는 핵 보복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핵우산과는 달리 적국의 핵무기 사용 징후 탐지, 사전 경고·경보, 핵무기 사용 대응, 응징·보복 등 핵 위협 관리 전반에 대한 협력을 특징으로 하는 개념이다. 상대방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억제·차단한다는 의미에서 분명한 보복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무기의 재앙적 속성으로 인해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확장억제에서는 이 분야 협력 역시 핵 보복 못지않게 강조된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핵 사용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핵 보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과 동맹국 간 핵 운용과 관련된 정보공유 및 협의, 공동기획 및 집행이 가능한 대화채널을 운용할 필요가 있으며, 워싱턴 선언에 명시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은 바로 이러한 기능에 특화된 협의체다. 일부에서는 NCG가 차관보급 협의체라는 점에서 그 권한과 기능상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등 현재 여건과는 크게 다른 대안들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관·차관급 협의에 비해 기민하고 상시적인 대응이 가능한 NCG가 오히려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나토의 경우와 굳이 비교하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없다. 나토와 한·미동맹 모두 미국의 핵심적 동맹이며, 확장억제 공약은 한국과 나토 회원국들을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굳이 나토와 한국을 비교하자면 다자동맹 체제인 나토에 비해 양자동맹인 한·미동맹의 경우 협의가 원활하고 적국의 핵 위협 시 대응이 더 분명해진다는 강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체 핵무장이라는 우리 카드를 포기했다는 주장 역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고, 이에 충실하려면 자체 핵무장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즉 워싱턴 선언은 기존 입장의 재확인이지 핵무장과 확장억제를 거래한 것이 아니다. 이번 선언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대안들은 북한 핵 위협 수준 등 미래의 여건 변화에 따라 언제든 협의가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NCG와 같은 협의체 운용을 최적화하고 상호 협의의 습관을 통한 신뢰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의 생각과 추세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확장억제를 공약한 국가들에 대해 이를 주기적으로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지만(이는 나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확장억제 의지 표명을 통해 한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고 그것이 워싱턴 선언으로 나타났다. 과거 전술핵 재배치 등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던 미국 정책 서클이 이제 이를 고려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변화 추세라는 큰 흐름을 읽으면 미래에는 더 확실한 보장 조치 역시 충분히 가능하고, 그걸 생각해야 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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