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퍼스펙티브] 의대·수도권·암기 쏠림, 국가 발전 가로막는다
국가 인적자원의 3차원 균형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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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쏠림 등으로 과학기술 연구인력과 국방인력 확보 경고음
인재의 수도권 쏠림으로 지방은 소멸 위기 맞는 등 문제 심각
창의력·감성지능 중요한 시기에 학교는 여전히 암기 위주 교육
국가가 원하는 분야에 인재 가도록 사회보상시스템 만들어야
」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어렵다. 다만 능력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국가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도록 사회 보상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개인도 국가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국가 발전에 더욱 쓰임이 있는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게 사회적·재정적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인적자원 활용 전략의 실행은 사회보상시스템으로 구현된다. 인재는 물과 같고, 보상시스템은 물길과 같다. 물은 물길을 따라서 흐른다.
대한민국의 인적자원 활용은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또 그 활용이 편중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적자원 활용은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적자원의 활용 분야, 지역적인 분포, 그리고 인적자원의 재능이 그것이다. 한국의 인적자원 문제를 이들 3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인적자원의 분야 편중
첫째, 인적자원의 활용 분야에 관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써 실존 의의를 가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활동이 공익적 관점에서 기여도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모든 직업은 다 같이 평등하게 신성하다. 하지만 직업에 따라 국가와 공익에 기여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월드컵 축구팀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축구팀에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가 있고, 훈련과 전략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밖에 행정과 의료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경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은 필드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최우선의 노력을 한다. 만약 지원 인력이 선수보다 더 좋은 보상을 받게 된다면 우수 인재가 선수보다 지원 인력을 선호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은 국가 경영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직업에 따라 국가 안보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다른 사람이 해도 거의 비슷하여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기여도가 높은 분야에 우수 인력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 연구 인력과 국방 인력의 확보에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이공계 대학을 중퇴하고 의대로 가기 위해 재수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과학기술 연구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국방 인력 확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중도 포기자가 2018년에 13명이 나왔는데, 지난해에는 68명이나 나왔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중도 포기자는 2019년 255명에서 2021년 364명으로 증가했다. 국가를 지키는 자부심과 사명감만으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균형 있는 인재 활용을 위한 사회 보상시스템의 재설계가 절실하다.
인적자원의 지역 편중
둘째, 인적자원의 지역 쏠림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현 추세를 보면 지방 소멸은 정해진 미래로 보인다. 지방에 있는 젊은이들의 수도권 집중이 지속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몰려들고, 취업을 위해 수도권에 몰려들고 있다. 여러 가지 좋은 환경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많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수도권 쏠림은 지방 소멸을 가져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면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지역과 대학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 발전 계획을 세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글로컬 대학 사업이 그것들이다. 이 제도들은 그동안 정부만 바라보고 있던 대학과 지자체들이 지역 활성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인재의 지역 쏠림 현상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결국 인재 확보전에서 판가름난다고 본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12일 발표한 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 과학기술 (STEM)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도 같은 달 16일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연설에서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은 이민 정책을 활용하여 전 세계 우수 인력을 모으고 있다.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활용하여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도 우수 인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우수 외국인을 유치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매년 1000명의 과학기술 우수 외국 유학생에게 영주권을 주는 ‘한국형 천인계획’을 제안하고 싶다.
인적자원의 재능 편중
셋째, 암기력 위주 재능 편중이다. 챗GPT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범람은 인류 문명사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 큰 걱정은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10년, 20년 안에 현재보다 몇십 배나 지능이 뛰어난 인공지능이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도 완전히 패러다임이 변해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인간은 계산과 기억을 컴퓨터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재능은 이미 컴퓨터가 월등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래 세상에서는 지식도 이렇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기존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은 의미가 크게 감소할 것이다. 이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재능이 중요해진다. 창의력과 감성 지능을 갖춘 인재가 사회를 주도할 것이다. 창의력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곧 창의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있는 학교에서는 질문을 잘하는 학생에게 ‘질문왕’이란 상을 준다.
우리는 현재 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학교에 가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대화한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교사보다 더욱 잘 가르쳐 주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 크게 변한다. 또 교사나 친구들과 대화할 필요성도 크게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인간 사이의 대화가 줄어들고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이처럼 인간 사이의 소통이 줄고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면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세상과 사뭇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특이점 시대 감성지능 길러야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전하고 진화하여 오늘의 현대 문명을 일구어 왔다. 인간은 혼자 있는 듯하다가도 외롭고 약해질 때 주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평상시 따스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놓지 않으면 가슴속에 문득 떠오르는 실존적 허무와 공허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미 대도시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는 현상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 건강한 인간 사회를 위해 감성지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학생들이 성인으로 성장하여 활동하게 될 약 20년 후인 2043년에는 특이점(Singularity) 시대에 진입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세상이다. 그때에는 개인은 물론 국가도 특이점에 맞는 경쟁력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분야·지역·재능의 인적자원 활용에서 3차원 균형 전략을 준비해야 하겠다.
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 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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