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주의 시선] 위선 페널티
영화 속 금자의 수감 생활 13년은 복수의 칼을 갈고 닦는 인고의 시간이었다('친절한 금자씨', 2005).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 선생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잔혹 피날레를 꿈꿨다. 세상 물정 모르는 금자를 꾀어 6살 원모를 유괴하게 하고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운 작자다. 금자는 그러나 겉으론 세상에 둘도 없는 친절 모범수, 살아있는 천사로 통했다.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서는 금자를 야릇한 미소의 전도사가 하얀 두부를 들이밀며 맞이한다. 금자는 그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노려보더니 두부를 접시째 엎어버리고는 또랑또랑 쏘아붙인다. “너나 잘하세요.” 속죄와 구원을 갈구하는 가련한 여인의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복수심에 불타는 마녀로 탈바꿈하는 극적 반전이다. 동시에 개인∙사회∙종교의 이중성에 던지는 묵직한 돌직구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금자처럼 가면 하나쯤은 걸치고 살아가는 존재 아닐까. 기뻐도 슬픈 척, 슬퍼도 기쁜 척 감정을 숨바꼭질하곤 한다.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젠체하기도 한다. 남몰래 쌓아 놓은 재산이 많으면서도 서민 흉내를 내는가 하면, 별반 가진 게 없으면서도 부자 코스프레를 서슴지 않는다. 겨 묻은 남의 알몸을 억지로 보는 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듯 배불뚝이 맨몸이 아무 데서나 드러나지 않게 잘 가려주는 것을 공동체 예의범절로 여기며 생활해 나간다.
그런데 가면에 도덕적 현미경을 갖다 대면 그때부터는 위선(僞善) 모드가 작동한다. 2012년 미국 오하이오대 마크 앨리케 교수팀 연구에서 미국인 89%는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영화 코너를 들락거린 사람이 포르노 추방 운동을 돕는 건 위선’이라고 판단했다. 절반 가까운 43%는 ‘교회 자선행사에 자원봉사 나서는 것만으로 위선’이라고 봤다. 또 다른 연구에선 ‘불법 약물 사용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은 위선’이라는 답변이 65%에 달했다. 딱히 누구를 욕하거나 해코지하지 않더라도 위선은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돈다.
위선을 행한 사람은 온갖 미움을 사게 된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비아냥과 손가락질이 날아든다. 왜 그럴까. 심리학자인 질리언 조던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팀은 ‘거짓 신호(false signaling)’ 개념으로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남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타박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사람에 비해 더 도덕적인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애초 비판 행위는 거짓 신호가 된다. 거짓 신호는 사람의 분노와 불안 감정선을 동시에 자극해 비난의 강도를 높인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의 골도 그만큼 더 깊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면 서러움이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법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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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위선은 분노와 불안 유발
수습 지름길은 신속한 과오 인정
김남국 회피성 해명, 비난에 기름
」
조던 교수는 2022년 논문에서 이를 위선으로 얻게 된 평판 이익에 대한 비용으로 계산하고, 위선 페널티(penalty)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위선세(稅)' 정도가 아닐까. 조던 교수는 벌칙을 피해가거나 줄일 수 있는 꿀팁도 제시했다. ‘정직한 위선자가 되라’. 한마디로 자기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라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건 역시 타이밍이다. 그런데 흙수저 코스프레로 국민을 우롱했다는 비판을 받는 김남국(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원은 그 반대로 갔다.
‘60억 코인 투자’ 의혹이 불거지자 김 의원이 내민 첫 카드는 음모론과 물타기였다. “민감한 금융정보와 수사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은 ‘한동훈 검찰’ 작품” “이준석이 하면 자랑이 되고, 김남국이 하면 문제가 되는가?”(5월 6일). 그러면서도 음모론의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누구도 코인을 사라고 한 적 없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반박에 변명이 궁색해졌다.
게다가 “고2 때 산 안경을 20년 동안 썼다” “변호사 시절에도 아버지 차 물려받아 24만㎞까지 탔다”(5월 8일)는, 본질과 무관한 생뚱맞은 읍소가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사이 김 의원 의혹은 도덕적 위선의 수준을 뛰어넘어 ‘코인 게이트’ 의혹으로 번졌다.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는 지각 사과는 있는 듯 없는 듯 묻혀버렸다.
다시 영화 속 금자. 복수극은 완성했어도 유괴에 가담했다는 원죄의 구원은 끝내 받지 못했다. 어느 겨울밤 금자는 새하얀 눈 속에서 두부 모양 흰 생크림 케이크에 얼굴을 연신 파묻으며 다짐한다. “하얗게 살자”고. 속죄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식이었다. 어떤 과오든 만회할 때를 놓치고 나면 아무리 깨닫고 뉘우쳐도 하얗게 씻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임종주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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