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다. ‘출판특구’ 서울 마포구에서 책의 흔적을 지우려는 구청장의 노력은 내심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성실하다. 작은도서관을 없애려 하고, 출판문화진흥센터의 용도를 변경하려 하고, 도서관 예산 삭감에 반대한 도서관장을 일방적으로 파면하는 일련의 의사결정을 보고 있으면, ‘출판특구’라는 이름과 경의선책거리, 와우북페스티벌이 보여주는 마포구의 정신적 유산을 뭐로 생각하는지 의아해진다. 갈 데 없는 학생들이 작은도서관에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출판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협업의 장을 펼치는 일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책은 꽤 끈질기다. 구청장의 집요함을 수천 년은 뛰어넘을 정도로 집요하다. 『갈대 속의 영원』(2023)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수많은 고전이 권력자들을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고전이 되었다. 예를 들어 오비디우스의 책은 아우구스투스를 이겼다. 사포의 시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극복했다. 칼리굴라는 호메로스의 시를 파괴하지 못했고, 카라칼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없애지 못했다.” 책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책이라는 물건이 끈질긴 것이 아니다. 책이라는 물건을 지키는 사람들의 끈질긴 마음이 책을 끈질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등장한다.
마포구에도 이런 끈질긴 사람들이 있다. 마포구의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고즈넉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곳곳의 작은 서점들과 그 서점에 입점할 책을 만드는 사람들, 그 책을 카페에 앉아 읽으러 오는 사람들, 그렇게 온 독자들이 저자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보내는 시간에서 오기도 한다. 구청장이 이런 유산 대신 다른 비전을 실현하고 싶다면, 그 다른 비전이 차라리 설득력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로를 빨갛게 칠하고 ‘레드로드 페스티벌’을 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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