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빌딩… 美 상업용 부동산 ‘제2 금융위기’ 뇌관되나

신재희 2023. 5. 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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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재택근무 등 수요 줄어
공실률 19%… 31년 만에 최고 수준
대출 70%가 중소 은행… 부실 위험
게티이미지


사그라드는 듯했던 미국 지역은행 발(發) 불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위기를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는 잠재적 뇌관으로 꼽히는 것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CRE) 대출 부실 문제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약 70% 가까이는 중소형 은행이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금융위기 때도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위기의 단초가 된 경우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137개 소형은행이 연쇄 파산했던 S&L(저축대부조합)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저축은행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늘렸다가 부동산 가격 폭락을 맞으며 줄줄이 스러졌다.

미국·유럽 등 얼어붙는 부동산 시장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융지구 중심가에 있는 한 22층짜리 빌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초 이 건물이 6000만 달러(약 800억원) 안팎으로 매매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2019년까지만 해도 이 건물은 3억 달러(약 4000억원) 수준이었다. 4년 새 가격이 80% 폭락한 것이다.

상업용 부동산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쇄적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재택 근무 확산과 기업 긴축 경영으로 인해 사무실과 소매 상점 수요가 줄어든 결과다.

실제 부동산 가치 급락과 공실률 증가가 눈에 띈다. 부동산 정보업체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용 건물 가격은 지난해 초보다 약 25%나 급락했다. 글로벌 신용 평가 기관 무디스가 집계한 올해 1분기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로,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비단 특정 지역, 특정 국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붕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는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2% 급감한 365억 유로(약 53조9003억원)를 기록했다. 사무실 거래 건수도 2007년 이후 최저치다.

문제는 미국 중소형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부동산 정보업체 트레프(Trepp)에 따르면, 지난해 말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5조6000억 달러(약 7282조원)로, 이 가운데 은행 비중은 50.6%였다. 또 은행권 대출의 규모 면에서는 중소 은행 비중(67.3%)이 3분의 2를 넘었다. 이중 202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1조5000억 달러(1952조원)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 연체율도 오르는 추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CMBS 연체율은 3.12%로 1월(2.94%)보다 0.18% 포인트 올랐다. 특히 사무용 부동산 CMBS 연체율은 1월 1.83%에서 2월 2.38%로 0.55%포인트 급등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은행들의 대출위험 관리 강화 등으로 CMBS 연체율이 추가 상승할 위험이 잠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험이 다시 중소형 은행의 대출자산 부실로 파급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비해야

최근 부동산 관련 금융 이슈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금융 위기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부동산 금융이 전체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되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어 왔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뒤에 하락하는 시기는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금융위기와 겹치거나 금융위기 전조 시기의 패턴을 보였다.

부동산 가격이 금융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이유는 ‘레버리지’ 효과 때문이다. 자금 조달이 대부분 대출을 통해 이뤄지며,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 손실 폭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격 하락이 시작되면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동산 금융이 전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당장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프로젝트파이낸스(PF) 시장을 중심으로 부실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0조원에 이른다. 1년 전(112조6000억원)보다 17조3000억원(15.4%) 늘었다. 특히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0.4%를 기록하며 전년(3.7%) 대비 3배 늘었다. 금융당국은 과거 위기 상황에 비하면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하지만, 관련 불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등은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항상 알려진 위험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한 경계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블랙 스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 스완이란 경제 영역에서 전 세계의 경제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광수 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불안감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는 언제라도 점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광수네 복덕방’이라는 부동산 독립 리서치법인을 만든 그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뱅크런’처럼 얼마든지 ‘펀드런’이 일어날 수 있다”며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하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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