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헤어질 결심' 아닌데... 신냉전 허상에 빠진 한국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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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
▲ 2019년 11월 4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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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작년 12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을 개방형 통상 국가로 진단하고 자유와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 건설을 대한민국의 비전으로 제시했으며 이를 위한 협력 원칙으로 포용, 신뢰와 호혜의 세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그러나 윤 정부의 외교는 말과 행동이 다른 행태를 보인다. 포용보다는 배제, 신뢰보다는 힘, 호혜보다는 진영의 이익 추구에 더 몰두하고 있다. 특히 더 큰 문제는 개방형 통상 국가로서 한국이 직면한 지경학적 변화에 대해 둔감하고 대응도 무능한 점이다.
먼저 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일본과의 무역 관계를 보자. 일본이 한국의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00년에는 수입의 약 20%를 차지했지만 2022년엔 7.5%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9%에서 4.5%로 줄었다.
그러나 대일 무역적자는 오히려 더 커졌다. 2000년부터 2022년 사이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5415억 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약 700조 원에 달한다. 연평균 235억 달러로 30조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국방비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사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단 한 번도 대일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이렇듯 대일 무역적자가 만성화된 핵심 원인은 반도체, 자동차 부품, 기계류 및 정밀기기 등의 소재, 부품 및 장비에서 의존성이 심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한국이 반도체 등 주요 수출산업으로 무역 흑자를 많이 남기면 남길수록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점점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더라도 대일 무역적자 개선을 위한 획기적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윤 정부에 과연 이 적자를 줄일 비전과 전략, 구체적인 정책이 있을까?
일본과의 무역 비중이 하락하는 사이 한국의 중국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무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2022년 한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중국(홍콩 포함)은 26.8%, 아세안 지역은 26.1%를 차지한다. 이 두 지역을 합치면 한국 수출의 절반을 넘는다. 특히 2022년 대베트남 수출은 대일 수출의 2배, 대미 수출의 절반 이상이며, 27개국 유럽연합 전체로 수출한 비중과 비슷하다.
이는 삼성이 베트남에 반도체 투자를 늘리고 다른 한국 기업들이 탈중국의 일환으로 베트남 진출을 가속화해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국 무역에서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핵심 원인 중 하나는 2022년 1월 출범한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 협정 (RCEP)'이다. RCEP에는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해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미 북미 자유무역 지대(USMCA)나 유럽연합보다 더 큰 자유무역 경제권이다. 사실 중국의 무역량 하나만으로도 27개국 유럽연합을 앞선다.
인도가 협상 중간에 대중국 무역적자 증가를 우려해 빠졌지만 향후 RCEP에 가입할 가능성도 크다. 아시아는 인도에도 가장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 모디 정부는 '동진 정책 (Look East Policy)'이라고 해서 아세안 및 인접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인도마저 참가하면 RCEP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된다.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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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RCEP의 출범으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재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이후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무역량은 오히려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이탈한 미국 및 유럽 등 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회귀하기보다 동남아로 이전하여 중국 기업들과 교역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는 오히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도 미국의 무역 적자는 역대 최대인 9453억 달러였다. 상품수지만 보면 1조 2천억 달러 적자다. 이 역시 역대 최대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여전히 부진하여 점점 더 많은 물품을 수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역 적자가 이렇게 커질수록 미국 경제는 전 세계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야만 지속 가능하다. 실제 미국으로 흘러 들어오는 투자금의 규모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미국 투자액에 비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이에 따라 2022년 말 미국의 순 대외금융 채무는 16조 달러를 상회한다. 미 GDP의 63%를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신뢰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 문제는 향후 시장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0여 년 사이 연방정부 부채가 빛의 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1년 약 5조 5천억 달러로 GDP의 55% 수준이었던 연방정부 부채가 지난 5월 초 현재 31조 5천억 달러로 GDP의 125%를 넘고 있다. 지금까지 최고 비율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의 119%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2022년에는 순이자 비용으로 399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연방정부 지출 총액의 7%, GDP의 1.6%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들 신냉전이란 표현을 쓰면서 앞으로의 국제 질서 또한 과거의 냉전 체제처럼 완벽하게 진영 간 절연, 봉쇄가 가능할 듯이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경학적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거에 고착된 퇴행적 인식이다.
▲ 미중 외교안보 라인의 최고위급 인사인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작년 11월 발리에서 개최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대면 정상회담 이후 약 6개월 만에 재개된 고위급 정무 대화다. 2023.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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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바이든 행정부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경제 갈등이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4월 말 한미 정상회담이 있기 1주일 전 연설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는 미국의 의도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 메시지를 받아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도 중국 경제 관련 제재는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만 국한될 뿐 무역 일반, 경제 전반에 걸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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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재무성 및 프린스턴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 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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