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낼 수도 없고, 안 낼 수도 없고”…4대 그룹 ‘미래기금’ 눈치 작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미래기금)’ 출연을 두고 삼성·SK·현대차·LG 등 주요 대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5일 익명을 원한 한 재계 관계자는 “내부에서 미래기금 출연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아니지만 부담이 상당하다”며 “먼저 나서서 낼 수도, 안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두 단체는 지난 3월 각각 10억원과 1억 엔(약 10억원)을 출연해 양국에 미래기금을 조성키로 한 데 이어, 이달 10일엔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운영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재계 4대 그룹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2016년 전경련을 탈퇴한 상태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이 “기금 출연은 어느 기업에나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재계에서 “회원사가 아니라 기금 출연을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4대 그룹의 기금 출연은 이들의 전경련 복귀와도 맞물려 있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통령 행사에서 전경련이 주요 역할을 하며 소통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복귀 명분이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전경련 회원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재단’ ‘기금 출연’ 같은 단어가 부정적으로 비출 수 있는 데다 출연 규모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자연재해 기부금을 낼 때 재계 맏형 격인 4대 그룹이 내는 금액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데, 먼저 ‘얼마를 내겠다’고 말하기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김 대행이 제시할 ‘전경련 쇄신안’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행은 이르면 이번주 중 쇄신안과 4대 그룹 복귀 여부 등에 대한 포괄적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정치와 단절을 선언하고, 글로벌 협력 등 사업 비전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전경련이 먼저 4대 그룹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정치와 담을 쌓고, 재계의 ‘방화벽 역할을 하겠다’는 정경 분리 선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계를 묶을 대표주자도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의 구심점 역할을 되찾는 과정으로 4대 그룹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경련이 공급망 개편, 미·중 갈등 등 글로벌 경제 이슈 연구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주요 기업들이 당장 회원사로 복귀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전경련이 글로벌 이슈를 연구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기업들이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전경련이 다른 경제단체보다 오랜 기간 민간 외교 활동을 해온 만큼 네트워크가 뛰어난 게 장점”이라며 “급변하는 국제경제 속 전경련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 국부창출·사회공헌을 축으로 역할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경제협회는 16~17일 이틀간 서울에서 한일경제회의를 연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여파로 웹회의로 열었다. 김윤 한일경제협회장(삼양그룹 회장)은 초대사를 통해 “세계 경제 침체 속 한일 간 협력을 통한 국제경쟁력 향상과 공동의 가치 창조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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