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력망 불안, 한전공대 논란…요금 소폭 인상에 쌓인 난제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나타난 한전채 쏠림 현상, 한국전력 적자에 따른 협력업체 고사 위기 등이 이어질까. 뒤늦게 발표된 올해 2분기 전기·가스요금이 소폭 인상에 그치면서 ‘요금 인상 지연’ 청구서가 경제 전반에 날아들고 있다. 전력망 투자와 전력 생태계 유지, 채권시장 안정,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운영 같은 난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적자 축소가 ‘발등의 불’인 한전은 당장 급하지 않은 전력시설 투자부터 미루기로 했다. 지난 12일 내놓은 자구안을 통해 발전소, 송·변전망 등의 건설을 늦춰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2036년까지 전국 송전선로가 2021년 대비 1.6배로 늘어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과 역행한다. 한전은 이미 재정 건전화 차원에서 2022~2026년 송변·배전망 투자 예산도 기존 계획안보다 2조705억원 줄였다.
전력망 투자 축소는 곧 전력 품질·안전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적자를 이유로 송배전 등에 투자하지 않으면 결국 전기 공급 능력이 떨어지고 대정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 시장 ‘공룡’ 한전이 흔들리면 6500개에 달하는 중소 협력사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 전기요금 인상이 주춤하면서 전력 생태계의 고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전의 대금 결제가 수개월씩 밀리거나, 납품이 밀린 완제품이 공장 앞에 쌓이는 식이다. 전신주 긴급 보수 등 필수적인 안전 조치도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못 하는 판이다. 2021년 1억4887만대 수준이던 한전의 기자재 구매량은 올해 1억1589만대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청한 A 전력기기 업체 사장은 “전기료 찔끔 올려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한전 납품 단가도, 물량도 떨어지면서 생태계 생존 자체가 어려운 만큼 빠르게 요금 현실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소폭의 요금 인상만으로 자금 융통이 어려운 한전은 채권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이미 9조9500억원(14일 기준)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연간 발행액(31조8000억원)의 3분의 1에 가깝고, 2021년 발행액(10조43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한전채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지난해 말 발행 한도를 올린 한전법을 또 개정해야 할 판이다. 회사채 발행뿐 아니라 단기 자금인 CP(기업어음) 발행 잔액도 5조500억원(12일 기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8000억원 급증했다.
신용등급 ‘AAA’ 한전채가 연 4% 안팎 금리로 계속 쏟아지면서 다른 회사채를 구축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많은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면서 여러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채 발행이 지금처럼 이어지고 하반기 경기가 안 좋으면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금융 위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전 재정 악화에 따른 여권의 자구책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문재인 정부 당시 설립된 한전공대 운영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한전 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한전공대 출연 계획을 기획재정부와 면밀히 검토해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출연금 지원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취지다. 다만 12일 한전이 발표한 자구안에는 한전공대 출연금 삭감이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개교한 한전공대는 현재 대학 설립·운영 과정의 적법성을 따지는 감사원과 산업부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운영 계획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호현 산업부 전력정책관은 “(한전공대가) 나름대로 자구 노력을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 감사 결과가 나오면 자구 노력과 함께 종합적으로 (후속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서지원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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