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밀집사육’이 화근…구제역, 돼지까지 사정권

맹찬호 2023. 5. 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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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재확산…‘전국 농가 비상’
사흘 동안 소 1000마리 이상 살처분
‘빽빽한 밀집사육’…순식간에 번져
2030년부터 임신 돼지 스톨 사육 금지
지난 11일 충북 청주 구제역 최초 발생지에서 가까운 한 한우 농장 소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4년 만에 구제역이 충북 한우 농가 6곳에서 발생했다. 이번 바이러스는 해외에서 유입됐을 것이란 분석 결과도 나왔다.


방역당국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바이러스 유형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추가 확산 가능성은 여전하다.


특히 방역대 인근 돼지, 염소 등 우제류 농가로 번질 시 8년 전 우리나라 전체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구제역 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충북 증평군 한우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앞서 청주시 소재 한우 농장 5곳에 발생한 데 이어 타지역 발생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긴급행동지침(SOP) 등에 따라 살처분한 한우는 증평군 농장 소 418두와 청주시에서 발생한 구제역 5건(소 500여 두)을 포함해 총 1000마리를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제역 발생이 확인된 증평군 농장은 구제역 최초 발생지인 청주 북이면 농가에서 12.7㎞ 떨어져 있다.


충북도는 도안면 발생 농가 3㎞ 이내를 새로운 방역대로 지정해 이동을 통제하고 거점 소독시설을 설치하는 등 방역을 강화했다.


새 방역대에는 177개 농장(한·육우 146개, 돼지 9개, 염소 18개, 사슴 4개)이 밀집해 있다.


청주 구제역 발생 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해당 농장 반경 3㎞에는 231개 농장, 3만9998마리 우제류가 몰려있다.


청주시는 접종 3주 경과 우제류에 대한 긴급 백신 접종을 지난 3일 완료했다. 의심 신고는 없었다.


충북도 구제역 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도내 항체 양성률은 소 95.5%, 돼지 94.9% 염소 88.0% 등으로 전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전국 항체 양성률은 소 98.2%, 돼지 93.2%, 염소 89.8% 등으로 집계됐다.


다만, 이곳에서 사육 중인 소·돼지·염소에 대한 임상검사를 진행 중이어서 추가 확진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구제역은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발병해 축산농가에 시름을 안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름철인 2014년 7월 경북 의성·고령, 8월 경남 합천 등에서 구제역이 발병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쉽게 퍼지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지만, 전염성이 강해 국내에선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된 만큼 안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공기로 육지에서는 50㎞, 바다는 250㎞까지 전파된 보고도 있다.


최인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 전파가 가능하고 워낙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국지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소·돼지 등 우제류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지난 구제역 파동보다 지속적으로 해왔기에 과거처럼 대규모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구제역 소부터 왔지만…‘공장식 밀집사육’으로 돼지까지 확산 우려

양돈농장에서 돼지를 실은 차량이 한 도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구제역이 발생지역 인근 돼지 농가로 퍼질 경우 2010~2021년 사상 최대 피해를 냈던 구제역 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


당시 구제역은 전국 6241개 농가를 휩쓸었다. 소·돼지 348만 마리가 땅속에 묻혔다. 매몰지 침출수 유출로 인근 토양과 지하수 등이 오염되는 등 2차 피해가 잇따랐다. 살처분 보상금을 포함해 정부가 사용한 예산은 3조원에 이른다.


돼지는 소보다 구제역 확산 속도가 빨라 농식품부를 포함한 지자체, 축산농가, 방역당국 등 관련 업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돼지는 소에 비해 구제역 전파력이 100배에서 최고 3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빽빽하게 가둬 키우는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으로 키우다 보니 한 마리가 걸리면 농장 내 모든 돼지로 순식간에 번진다.


대부분 돼지 사육 농가는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를 철제 감금 틀인 ‘스톨(고정틀)’에 가둬놓고 인공수정과 출산을 반복한다. 이런 밀식 사육은 전염병이 돌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정부도 2020년 동물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해 어미 돼지 스톨 사육 기간 제한 등 축산농가 준수 기준을 강화해 동물복지 수준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또 축산법 개정에 따라 교배한 날로부터 6주가 지난 임신돈 스톨(stall, 사육 틀) 사육을 금지했다. 사육업자는 임신돈이 일어나거나 누울 때 지장이 없도록 군사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돼지 사육업을 새로 허가받은 농장은 2020년부터 적용되지만, 기존 돼지 사육 농가는 2029년 12월 31일까지 적용이 유예됐다. 6년이 넘는 유예기간 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시설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채수지 법률사무소 백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점차 동물 복지가 나아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부족한 수준”이라며 “4년여 만에 발생한 구제역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서 정부, 지자체 등이 시설전환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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