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만들다가 생태계 파괴… ‘투구게 시약’ 대안 있을까? [건강해지구]

이해림 기자 2023. 5. 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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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게의 혈구추출성분으로 만든 시약 대신, 재조합C인자로 만든 시약을 의약품 독소 검사에 활용할 수 있게 한 대한민국약전 개정안이 행정 예고됐다. 사진은 시약을 만들기 위해 투구게에서 피를 뽑는 모습./사진=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커다란 꽃게 같은 동물에서 파란색 피를 뽑아낸다.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다들 한 번쯤 본 적 있는 장면이다. 현재 투구게는 백신 등 의약품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투구게의 혈액에서 추출한 성분이 의약품의 세균 엔도톡신(독소)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시약에 들어가서다. 피를 뽑힌 투구게 다수는 사망한다. 투구게 혈액으로 시약을 제조하는 게 동물 윤리에 어긋나는데다,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오래 있어왔다.

이에 투구게를 이용하지 않은 엔도톡신 검사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 20일, 독성 시험에 투구게 혈구추출성분을 활용한 시약 외에 유전자재조합 시약도 활용할 수 있게 한 ‘대한민국약전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개정안에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예고사항에 대한 찬반 여부와 그 사유 ▲성명·주소·전화번호 ▲기타 참고사항을 기재한 의견서를 오는 19일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제출할 수 있다.

◇독소 만나면 응고되는 투구게 피… 의약품 오염 확인에 활용
현행 대한민국약전에 따르면 엔도톡신시험법은 다음과 같다. 바로 ‘투구게의 혈구추출성분으로 만든 라이세이트 시약으로 그람음성균에서 유래한 엔도톡신을 검출 또는 정량하는 방법’이다. 개정안엔 여기에 ‘투구게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재조합한 C인자를 써서 엔도톡신을 검출 또는 정량하는 방법’이 추가됐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투구게 시약이 아닌 재조합C인자 시약을 사용해도 엔도톡신시험법을 시행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생물 유래 성분이 없는 시약으로 검사하는 방법을 신설함으로써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투구게의 양을 최소화하겠단 것이다.

엔도톡신이 무엇이길래 투구게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검출하는 것일까. ‘내독소’라고도 불리는 엔도톡신은 그람음성균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지질다당체(lipopolysaccharide)다. 극히 미량이어도 발열성이 강한 특성을 지녔다. 입으로 섭취할 경우 독성이 없지만, 혈액에 들어가면 시상하부의 체온조절중추를 자극함으로써 발열 반응을 일으킨다. 패혈증이나 치사성 쇼크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의약품을 생산할 땐 엔도톡신 오염 여부를 확인하려 내독소 검출 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토끼 이용한 기존 검사법보다 정확… 매년 40~50만 마리 착취
의약품에 엔도톡신(내독소)이 있는지 검사하는 실험에 처음 이용된 동물은 토끼다. 살아있는 토끼에게 엔도톡신 용액을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발하고, 열이 나는지 관찰해 엔도톡신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약전에서는 체중 1.5kg 이상의 토끼의 귀정맥에 검사 대상 용액을 1kg당 10ml 주입해 검사하도록 규정한다. 이후 체온계를 직장 내에 60~90mm 깊이로 삽입해 3시간 동안 30분 간격으로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

상황은 1963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투구게의 혈구 속에 있는 성분이 내독소에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밝혀지며 새로운 검사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투구게는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피가 응고되며 몸을 보호하는 독특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투구게의 혈액 속 라이세이트(Limulus Amebocyte Lysate, LAL) 단백질이 소량의 엔도톡신에도 응고된다. 이에 투구게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구 세포를 정제해, 의약품 속 엔도톡신을 검출하는 ‘라이세이트 시약’이 개발됐다.

라이세이트 시약 검사법은 토끼 발열성 시험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특이성과 민감성도 높다. 이에 현재 엔도톡신 검출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투구게로서는 불행한 소식이다. 연간 40~50만 마리의 투구게가 라이세이트 시약 제조를 위해 포획되고, 피를 뽑는 중 10%가 사망하기 때문이다. 채혈 후 바다로 돌려보내더라도 이 중 15%가 사망한다고 알려졌다. 피를 뽑지 않은 투구게의 사망률은 3%로 매우 낮지만, 피를 뽑은 투구게의 사망률은 22.5~29.8%나 된다는 2010년 연구 결과도 있다.

토끼를 이용한 발열성시험./사진=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발열성물질시험법' 안내책자
◇ ‘동물 보호’ 취지는 좋지만… 제약계 도입될지는 불투명
이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동물대체시험법’ 도입을 언급하며, 투구게를 대체하는 엔도톡신시험법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식약처가 행정 예고한 개정안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2021년에 자체 연구사업을 통해 재조합C인자를 통한 엔도톡신 검사법이 기존 라이세이트 시약 검사법과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성능을 지녔음을 확인했다”며 “최근 해당 시험법이 유럽약전에 등재되기도 한 만큼, 새로운 시험법이 국내에서도 많이 활용될 수 있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개정안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취지는 좋다. 다만,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재조합C인자를 이용한 엔도톡신 검사법이 라이세이트 시약 검사법을 완전히 대체하긴 어려워보인다. 개정안이 엔도톡신 검사법에 재조합C인자를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재조합C인자 검사법을 도입한 제약회사에 혜택을 주는 방안도 아직 검토되고 있지 않아서다. 식약처 관계자는 “재조합C인자 검사법이 약전에 추가되긴 했지만, 기존 라이세이트 시약 검사법을 재조합C인자 검사법으로 완전히 대체하도록 한 것은 아니”라며 “재조합C인자로 엔도톡신 시험을 진행하는 제약사에 별도의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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