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람 유족의 한탄 "법정에서만 사과, 정작 유족은 못 받아"
[소중한, 김화빈, 박수림 기자]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의 결심공판을 방청한 뒤 취재진에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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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들은 법리나 판례를 근거로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은 맞지만 죄는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우리 예람이를 죽인, 그리고 군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죽는 핵심 이유입니다." - 이주완(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씨
"법정에서만 계속 애도한다는 말을 들었지 (가해자는) 실제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사죄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 고 이예람 중사 유족 측 강석민 변호사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그리고 유족 측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마치고 난 뒤 카메라 앞에서 "재판부의 현명을 판단을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정진아 부장판사)는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 8명 중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양아무개씨(군사법원 군무원), 정아무개 중령(당시 공군본부 공보정훈실)의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지난해 9월 이들을 기소한 특검은 이날 각 피고인에게 징역 2년, 징역 2년 6개월,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오는 6월 29일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다.
[전익수 2년 구형] "부당한 위력 행사" vs. "억울함 호소 전화"
전 전 실장은 2021년 5월 21일 이 중사를 강제추행한 가해자(장아무개 당시 중사)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6월 2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 내용을 평소 친분이 있던 군사법원 군무원(양아무개씨)에게 실시간으로 전달(카카오톡 메시지)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같은 사실을 전 전 실장의 휴대폰을 조사하던 중 인지했고 해당 군무원 양씨를 상대로도 7월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공무상비밀누설 혐의). 그러자 전 전 실장은 이틀 뒤 구속영장을 청구한 김아무개 법무관(군검사)에게 전화해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가 공무상비밀누설을 지시한 것처럼 돼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어떤 부분을 근거로 삼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캐물었다.
특검은 이 행위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위력행사 등)으로 보고 전 전 실장을 재판에 넘겼다.
이날 특검은 전 전 실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특검은 "피고인 전익수는 자신의 계급과 지위 등에 따른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공군 법무병과의 장으로서 장병들의 인권보호와 공정하고 정의로운 군 형사사건 처리에 있어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그 영향력을 자신과 측근의 개인적 안위를 위한 도구로 부당하게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군조직의 수직적·폐쇄적 특성을 이용한 권력형 범죄이자 군수사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또한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을 부여받은 군검사에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하면서 진상규명을 원하던 범국민적 기대에 역행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라고 강조했다.
전 전 실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전익수)이 군검사에게 전화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어떤 배경과 동기로, 어떤 의도로 통화한 것인지 재판부에 말씀드리려고 한다"라며 "당시 피고인은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수사무마, 부실수사의 몸통으로 지목돼 각종 의혹에 시달렸고 이어 허위보도까지 나오면서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다. 사실 확인차 전화해 질문하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해당 통화의 녹음파일은)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를 넘어 압수한 것이고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 중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자료가 너무 많다. 이러한 증거의 증거능력은 모두 부인돼야 한다"라며 "증거 중 불리한 예단을 형성하기 위한 내용이 너무 많다. 그 부분은 재판부가 공소장일본주의(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에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의 서류나 증거물은 일체 첨부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를 위반했다고 선언해 달라"고 덧붙였다.
전 전 실장은 최후진술에서 "제가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한 건 저 나름대론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다"라면서도 "(하지만) 군검사에게 어떤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특검에 의해 기소까지 될 줄은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으며 매우 참담하고 송구스럽다. 재판부가 잘 헤아려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의 결심공판을 방청한 뒤 취재진에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오른쪽은 유족 측 강석민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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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이 중사를 강제추행한 가해자의 영장실질심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빼내 전 전 실장에게 전송했다. 앞서 2021년 5월엔 뇌물수수 등으로 구속된 이동호 전 군사법원장의 교도소 이송 정보를 전 전 실장에게 전달(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위반 혐의)하기도 했다.
이날 특검은 양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강제추행 가해자의) 영장실질심사는 당시 상황에 비춰봤을 때 독립성·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컸던 재판이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군 수사책임자로서 장차 수사대상이 될지도 모를 전익수에게 영장실질심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림으로써 군검사·군판사를 전익수 등 이해관계자들에 의한 외압행사 위험에 노출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증폭됐고 그 결과 2022년 7월 1일부로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는 등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라며 "그릇된 충성심으로 전익수의 이익은 물론 나아가 전익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참작할 점을 찾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양씨 측 변호인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 성명과 직위는 공개정보이기 때문에 군판사·군검사의 인적사항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라며 "(이동호 전 법원장의 정보의 경우) 직무상 취득한 게 아니고 사적인 생활 영역에서 취득한 정보이므로 직무상 비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양씨는 최후진술에서 "할 말은 정말 많습니다만 저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 이러한 결과를 불러왔고 정말 깊이 반성한다"라며 "지난 2년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다. 재판부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군무원으로서) 제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공훈정보실 정 중령 징역 5년 구형] "심각한 2차피해" vs. "오보대응"
공군에서 공보 업무를 담당했던 정 중령은 이 중사가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사망한 것처럼 몇몇 기자에게 알리고(사자명예훼손·명예훼손),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직후 통화한 동료(김 중사)의 신상 및 녹음파일을 기자에게 전달한(공무상비밀누설·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정 중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특검은 "(정 중령은) 공군 수뇌부를 보호하고자 범행을 저질렀고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적극 이용했다"라며 "사망 원인을 왜곡하고자 이 중사와 배우자의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 거짓말을 지어내 퍼뜨려 심각한 2차피해를 일으켰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정한 방법으로 기자들을 이용해 국민 여론을 거스르려 했다. 정상적 공보절차를 배제하고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피해자 사생활, 수사정보, (관계자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했다"라며 "이런 수사기밀 누설 행위는 실체적 진실규명을 방해하고 제3자가 잘못된 인식을 하도록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중령의) 범행은 유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사에 대한 공군 내) 2차 가해가 명백한 사실이고 수사가 진전되지 않았으므로 유족이 공군에 항의한다고 해서 이를 탓해선 안 될 일"이라며 "그러나 피고인(정 중령)은 '미친 유족들'이란 적대적 표현을 사용하고 유족의 주장을 거짓으로 만들겠다는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를 오보대응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생활을 왜곡해 퍼뜨리거나 수사정보·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하는 것이 오보대응으로 미화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정 중령 측은 "김 중사(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직후 통화한 동료)의 성명, 소속, 계급을 기자에게 알려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건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그러나 공군에 대한 비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목적으로 한 게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이어 "(이 중사 부부의) 사생활을 기자들에게 말하면서도 '오프(더 레코드)'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피고인(정 중령) 발언의 대상자는 비밀유지 의무와 같은 취재윤리의 적용을 받는 기자이므로 전파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때문에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며 "또한 공무상비밀누설의 비밀은 국가기능에 위협이 돼야 하는 건데 (피고인의 발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정 중령은 최후진술에서 "임관 후 23년 동안 단 한 번의 사적이익을 챙기지 않으며 공군장교로서 자부심을 갖고 충실히 복무했다"라며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달게 처벌받겠다. 그 외 부분에 대해선 부디 재판부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봐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와 유족 측 강석민 변호사, 군인권센터 관계자, 다른 군사망사고 유족 등이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의 결심공판을 방청한 뒤 취재진에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
ⓒ 소중한 |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전 전 실장
"고통을 겪다 생을 마감한 이 중사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유족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정 중령
전 전 실장과 정 중령, 그리고 각 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양씨와 그의 변호인은 이러한 표현마저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 후 취재진을 만난 이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는 "우리 군과 군사법제도가 얼마나 황당한 무법천지였는지 재판부도, 국민들도 알 수 있었던 참담한 시건이었다"라며 "문제가 생기면 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윗사람, 조직부터 챙기는 이 추악한 행태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예람이가 죽음으로써 말하려고 한 피맺힌 절규"라고 말했다.
유족 측 강석민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잘못은 있다', '사죄한다', 심지어 '애도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선 법적 논리에 기대 피해 가려고만 한다"라며 "상당히 새로운 법리에 대한 기소 내용이 많기 때문에 재판부가 세밀한 기록을 보고 판단해 주실 것을 믿는다"라고 지적했다.
유족을 지원해 온 군인군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곧 이 중사 2주기가 다가온다. 여전히 아버님이 빈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곳을 지키고 계신다"라며 "이런 상황이 우리 군인권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 재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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