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꼬박꼬박 했는데 허탈”...구제역 확산에 축산농 비상[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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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서 4년 4개월 만에 발생…증평으로 확산
15일 오후 충북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입구. 마을로 통하는 다리에서 방역 요원이 출입차에 연신 소독약을 뿌렸다. 전날 석곡리 소재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 농장 앞에는 통행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축사 안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는 게 보였다.
구제역 발생 농가 맞은편에서 소 70여 마리를 기르는 한모(67)씨는 “아직 구제역 증상을 보이는 소가 없지만, 코앞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는 바람에 초비상 상태”라며 “농가 대부분 백신 접종도 꼬박꼬박하고, 다른 농장 방문도 자제했는데도 발생해 허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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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북이·증평 도안 ‘다닥다닥’ 축사 밀집
방역복을 입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직원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농가마다 채혈을 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항체 형성률을 조사하기 위해 농가당 소 8마리씩 채혈하고 있다. 결과는 이틀 안에 나온다”고 말했다. 구제역 발생 농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만난 연모(67)씨는 “하루 이틀이 고비인데 항체 형성률만 높게 나온다면 대규모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 구제역이 발생한 건 2019년 1월 이후 4년 4개월여 만이다. 증평군 도안면 경계에 있는 청주시 북이면 농장 3곳에서 지난 10일 처음 발생했다. 지난 11일 1곳에 이어 12일 1곳이 추가돼 청주에서만 발생 농장이 5곳으로 늘었다. 방역 당국은 지금까지 농장 5곳 한우 545마리를 매몰 처분했다. 북이면 발생지 반경 3㎞ 안 방역 대에는 232 농가가 한우 등 4만48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청주 구제역 최초 발생 농가와 도안면 축사는 12.7㎞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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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등 동남아 발생 바이러스와 유사
최모(33)씨는 “몇 해 전부터 땅을 빌려 기업형으로 축사를 운영하는 외지인이 많이 늘었다”며 “소를 키우는 축사 인근 2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바이러스가 옮겨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70대 농장주는 “매몰 처분을 발생 농장에 국한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소와 송아지 출하가 중단된 게 큰 부담”이라며 “사룟값과 볏짚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올라 출하가 장기화할수록 손해 규모가 커진다”고 말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가 해외에서 유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분석결과 청주 한우농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동남아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상동성을 보였다. 상동성은 같은 종이나 다른 종 개체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유사한 성질을 의미한다.
청주 구제역 바이러스는 2019~2020년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 분리주와 매우 높은 상동성(98.8%)을 보였다. 반면 2017년과 2019년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유전형은 같지만, 상동성(94.7~96.3%)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한편 구제역이 확산됨에 따라 각종 행사 등도 취소되고 있다. 동물학대 논란에도 중단되지 않았던 경북 청도소싸움 경기가 이번에 중단됐다. 청도소싸움 경기 운영자인 청도공영사업공사는 지난 주말(13~14일) 소싸움 경기를 취소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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