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모독죄 없애겠다"…태국 총선 파란 일으킨 'MZ 영웅'

임주리 2023. 5. 15. 16: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일(현지시간)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가장 개혁적 성향의 야당인 전진당(MFP)이 151석을 차지하며 제1 야당이 됐다. '탁신의 딸' 패통탄 친나왓(37)을 총리 후보로 내세운 프아타이당도 141석을 확보하며 선전했지만 '야권의 맹주' 자리는 내줬다.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69) 현 총리가 이끄는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3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MZ세대 영웅'으로 떠오른 하버드대 출신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MFP) 대표. AFP=연합뉴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가 15일 발표한 비공식 개표 결과, 전날 총선에서 전진당(151석)과 프아타이당(141석) 등 주요 야당 2곳이 확보한 의석수가 292석으로 하원(500석) 과반인 250석을 훌쩍 넘어섰다. 전진당은 그 전신인 신미래당(FFP)이 2020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되자 '헤쳐 모여'해 다시 꾸려진 이후 이번이 첫 선거다. 프아타이당은 기존 136석에서 5석을 더 얻었다.

야당 돌풍의 주인공은 'MZ세대 영웅'으로 떠오른 하버드대 출신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다. 그는 '왕실 모독죄 폐지' '군부 권한 축소' '징병제 폐지' 등의 개혁적인 공약을 내세워 젊은 세대의 표심을 공략했다. 그간 여론조사와 선거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에선 프아타이당이 1위를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실제 선거에선 전진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파란을 일으켰다.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는 젊은 세대의 표심을 자극해 이번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AFP=연합뉴스

전진당은 특히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왕실 모독죄 폐지를 공론화해 MZ세대의 표심을 자극했단 분석(CNN)이 나온다. BBC는 "태국에선 지난 2020년 일어난 반정부 시위 때부터 젊은 세대 중심으로 왕실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젊고 열정적인 유권자들이 전진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피타 대표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태국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여러분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는 여러분의 총리가 될 것이고,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여러분을 섬길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위는 지난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지지 세력인 프아타이당이 차지했다. 2001년 이후 프아타이당이 선거에서 1당 자리를 뺏긴 것은 처음이다. 패통탄은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세우고, 지난 1일 출산 후 이틀 만에 선거운동에 다시 나서는 등 막판까지 유권자에 호소했지만 제1야당 수성엔 실패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이 프아타이당을 이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3위는 중도 성향의 품차이타이당으로 71석을 확보해, 기존 51석에서 20석이 늘었다.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이 이끄는 이 당은 군부 중심의 현재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지만, 친(親)군부로 분류되지는 않아 향후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친군부 정당의 성적은 초라하다.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의 팔랑쁘라차랏당(PPRP)은 40석, 현 쁘라윳 총리의 RTSC는 3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양당 합쳐 80석이 채 되지 않는다. RTSC가 PPRP서 떨어져 나와 2021년 창당된 신생정당이란 점을 감안해도, PPRP가 116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큰 패배다.

2014년 쿠데타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진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75.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 양극화를 키우고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실패한 현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민심이 반영됐단 해석이 나온다. CNN은 "태국 유권자들은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총리에 놀라운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69) 태국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반군부 민심 뜨겁지만 정권 교체는 글쎄….


다만 현 정부 심판에 대한 '뜨거운 민심'이 확인됐음에도 정권 교체 여부는 불투명하다. 태국 정부는 지난 2017년 헌법을 개정해 상원의원 250명을 모두 군부가 지명하는데, 총리가 되려면 상·하원(750석) 과반 득표를 해야 한다. 반군부 진영이 하원에서만 376표를 얻어야 한단 의미다.

이로 인해 전진당의 연립정부 구성이 매우 중요해졌다. 피타 대표가 일찌감치 친군부 정당과는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중도 품차이타이당 외 군소정당들과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선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군부 쿠데타가 20여 차례 일어난 만큼 군부가 '정당 해산' 등의 강수를 둘 가능성 역시 있다. 태국에선 지난 2020년 신미래당이 해산되는 등, 주요 야당들이 여러 번 해체된 바 있다.

태국 총선 공식 개표 결과는 60일 안에 나오며, 총리는 7~8월께 선출한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