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현장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이숙견]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후 산업안전기사 시험에 많은 수험자가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필기시험 응시자만 4만 1704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노동현장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시험에 이렇게 많은 응시자가 몰리는 현실을 볼 때, 법 제정의 의미를 실감한다.
▲ 인터뷰 중인 하인혜 님. 정유공장에서 폭발을 비롯한 각종 사고가 발생한다.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유공장 1차 하청업체 안전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유공장에서 일한 지는 6개월 정도 되었고, 이전에는 일반화학 공장에서 4년 근무했습니다."
- 어떻게 안전관리자를 선택했나요?
"처음 입사했을 때 시공과 안전을 같이 배우면서 일했고, 둘 중 고민하다가 안전을 선택했습니다. 시공을 선택하기에는 건축 공학 쪽 기초가 없는 데다, 저랑은 맞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시도해볼 만한 영역이 안전관리더라고요. 그리고 첫 직장을 소개해 주신 분이 앞으로 안전관리가 중요한 시대가 온다고 해서 선택한 것도 있습니다.
- 정유회사는 무엇을 생산하고 어떠한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정유공장은 석유 원재료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제품을 생산합니다. 공장 안에 정유 공정, 윤활유 생산 공정, 석유 화학 제품 원료와 같은 여러 개의 공정이 있어요. 석유화학과 같은 설비 위주의 공장을 플랜트라고 하는데, 생산 시설은 자동화되었지만, 시설을 보수, 유지하는 업무는 고숙련공이 중심이 됩니다. 제가 일해온 업체 모두 시설 유지, 보수,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설비 유지 관리업체, 전선 유지 관리업체, 물류 업체, 생산 보조 업체 등 다 포함하면 300여 개가 넘게 업체들이 있어요. 규모도 다른데, 적게는 20~30명 이상 일하고, 제가 일하는 업체는 5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봄과 가을에는 공장 설비공사 중심으로 하고, 여름 겨울에는 생산 중심으로 합니다. 플랜트는 설비 쪽이라 봄, 가을에 가장 일이 많고, 물류나 생산은 여름, 겨울에 일이 많습니다."
대형설비, 유해위험물질 등 많아... 하루 종일 안전관리 업무로 바빠
- 안전관리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출근부터 퇴근까지 작업에 대해 알려주세요.
"작업 시작하면 TBM(Tool Box Meeting)을 통해서 간단한 회의와 기초적인 안전교육을 합니다. 그리고 하루 전날 신청한 작업허가서가 발행되면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때 안전관리자는 현장 패트롤(순찰)을 진행합니다. 패트롤을 돌면서 작업 내용과 작업허가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주로 고소작업, 크레인 사용, 화기 사용 작업은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편이며, 유해·위험 화학물이 쓰이는 공정, 대형설비 공사할 때도 확인합니다.
대형장비 대여업체가 갖춰야 할 필수 서류를 구비했는지도 저희와 같은 하청업체 안전관리자가 확인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원청사 안전관리자가 패트롤을 돌면서 차량과 서류가 맞는지를 확인해요. 맞지 않으면 작업을 중단시킵니다. 당연히 허가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원청사 직원들과 함께 정정하고, 정정이 완료되면 추가 서명 후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후 작업에 필요한 안전 장구류 재고를 확인하고, 부족하면 새로 주문을 넣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음 날 작업에 대한 허가서 발행 업무를 합니다."
- 어떤 경우에 초과근무를 하거나 야간작업을 하시나요?
"기본적으로 8시간 근무인데, 야간작업이 많지는 않아요. 야간당직도 정기 보수 기간처럼 짧은 기간 내에 공장 수리를 완료해야 하는 경우에 있습니다. 공장 설비를 모두 중단시키고 보수작업을 하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수공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모두 추가 공사로 진행합니다. 그러면 추가 공사를 끝내야 하니깐 야간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고요. 그 외에는 석유화학공장이 운영된 지 50여 년이 된 상황이라, 노후화된 설비가 갑자기 고장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긴급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서 야간 또는 주말 근무를 합니다."
- 함께 일하는 안전관리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현장사무소마다 적게는 3명, 많게는 5명까지 있어요. 혼자서 일하기에는 일이 많기에 기본으로 세 명은 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상 정비를 하는 상주업체 정규직 직원 외에, 대형 프로젝트 공사가 진행되면 수십 명씩 들어오는 때도 있습니다."
- 건설업이나 조선업과 비교하여 안전관리의 측면에서 정유공장이 가지는 특징이 있나요?
"플랜트는 공장을 짓고, 관리하니까 조선업과 건설업 사이에 있는 느낌입니다. 일은 조선소와 거의 똑같습니다. 다만 이쪽은 지상에 고정된 건물인 데다, 유해·위험물을 많이 다룬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청사와 하청사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원청사의 안전 규정을 기반으로 컨트롤이 이루어지는 구조죠. 무엇보다도 설비가 폭발하면 몇천억씩 손해를 입으니까 원청사에서 안전관리를 엄격하게 합니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대형설비를 다루다 보면 사고가 나기도 하고요."
- 발생하는 사고의 종류는 무엇인가요?
▲ 각종 유해위험물질을 다루는 정유공장, 그만큼 안전 확보가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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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관리자로서의 어려움, 안전사고의 노출
- 안전관리자로 일하면서 경험한 어려움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요즘 산업재해가 중요해지니 노동자들이 안전규정을 잘 따르는 편이지만 제가 요구하는 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노동자들보다 어리다 보니 쉽지 않은 면도 있고요. 또 하청 업체는 원청의 안전규정을 잘 따라야 하고, 그런 면에서 원청 안전관리자들이 현장에서 막강하긴 합니다."
- 공사 및 수리할 때 기간 단축을 하거나 위험한 때는 없나요?
"작년 뉴스에 나온 정유공장의 폭발사고도 야간에 긴급으로 돌리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긴급작업이 뜨면 안전관리자도 그렇고 원청사 엔지니어들도 전부 다 파악이 잘 안 돼요. 일단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 이걸 이렇게 하면 터지나, 저렇게 하면 터지나, 그런 부분까진 완전히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잘 돌아가도 갑자기 셧다운이 된다거나 문제가 생겨서 가동이 안 되기도 하는데, 급하게 수리를 하다보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죠. 또 뜯어보기 전까지는 왜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니까 그런 부분에서 긴급작업을 해야 하고 사고가 자주 나죠."
- 안전관리자 일을 하면서 다쳤던 경험은 있었나요?
"최근에 다쳤어요. 회사 패트롤 돌다가 그라인더 파편이 튀어 스치면서 팔에 상처를 입었어요. 그리고 배관을 타고 올라가다가 보온재에 긁히고 손바닥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고요. 일단 설비 자체가 다 위험하니까 많이 다치기도 하고 하지만 크게는 안 다쳐요."
공상처리 vs. 산재처리, 원칙은 산재처리이지만 너무나 먼 현실
- 산재처리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공상 처리했습니다. 작업자도 그렇지만, 안전관리자도 산재 신청을 잘 하지 않아요. 산재 처리하면 더 일을 만들게 된다는 인식이 있는 편입니다. 물론 원칙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리고 보통 다치면 그냥 공상이고, 손가락 5개 중에서 3개 이상 잘리거나, 떨어져서 허리 또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몇 달 동안 일을 못 하거나 아예 일을 못 하는 정도여야 신청하는 게 현실입니다."
- 왜 산재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산재 처리 하는 게 부담이 되는 거죠. 원청사에서 산재 신청이 되었다고 하면 왜 안전규정을 안 지켰냐며, 계약 연장할 때 신규 공사 발주 페널티를 부여하니, 하청사에게는 압박이 됩니다. 거기다 고용노동부도 조사하고, 벌금이나 작업 정지 같은 페널티를 받으면 타격이 크니 공상 처리 하는 거죠."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달라진 게 있습니까?
"전에 일했던 화학 공장은 안전관리를 허술하게 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1년 전부터 타 화학공장 안전관리자(15년차)를 스카우트해서 그 사람에게 전권을 주면서 안전관리를 완전히 바꿨어요. 지금 회사는 입사한 지 6개월이 안 되었지만, 옛날부터 안전관리를 엄격하게 했던 곳이에요. 작년에 정유회사에서 폭발사고가 자주 발생해 그런지 원청사도 그렇고 생산팀도 그렇고, 신경 많이 쓰고 엄청 예민합니다.
전에는 안전관리자가 대부분 프리랜서였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정규직 안전관리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안전관리자 교체 기준도 있는데, 산재 사망사고가 나거나, 기본 산재율보다 2배 이상 높거나, 3개월 수습 기간에 일을 못 하면 교체가 가능해요. 법이 그러니까 안전관리자도 기왕이면 더 좋은 현장을 가고 싶어 합니다. 노동자든 안전관리자든 모두가 안전한 현장을 원하는데, 그런 현장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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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이숙견 님이 썼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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