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의 마지막 '스승의 날', 이렇게 지나가네요

이준만 2023. 5. 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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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앞두고 돌아본 지난 시간들... "얘들아,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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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학생이 그려준 캐리커처
ⓒ 이준만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마지막 스승의 날이다. 내년 8월이 정년이지만, 사정상 올 8월에 명퇴를 하기로 했으니 교직 생활에서 마지막으로 맞는, 최후의 스승의 날이다. 다행인 건,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시국을 제외한, 최근의 스승의 날 풍경은 대체로 이러했다.

1교시 시작 전,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 놓고 아침 조회를 한다. 조회 끝 무렵에 학생 대표가 감사 편지를 낭송하고 각 반 반장과 부반장이 담임교사와 부담임 교사에게 꽃 한 송이를 달아 준다.

이때, 참 뻘쭘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꽃을 달아 주는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꽃을 받은 자격이 있는가, 이런 행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행사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시켜서 하는 행사인가 등.

그러고 나서 1교시 수업에 들어가면, 온 교실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어쩌고 저쩌고하는, 스승의 날 노래. 아이들이 그토록 목청껏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 젖히는 까닭은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래를 빌미로 교사의 시시껍절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교사들은 못 이기는 척, 대충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학생들을 타이르거나 윽박지르거나 하여 수업을 강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코로나 시국을 빼고, 최근 스승의 날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1990년대의 스승의 날 모습도 떠오른다. 학생들이 꽃 달아 주고, 1교시 수업 시간에 스승의 날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다른 점은, 그 시절에는 스승의 날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선물을 했다는 사실이다.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 하기도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잠깐 생각해 보면, '아,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참 많을 터이다. 스승의 날에 담임교사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했던 적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그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5월을, 가정의 달이 아니라 '선물의 달'이라고 불렀던 기억도 난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 그 당시 스승의 날 선물을 받는 것을 은근히 즐겼던 듯싶다. 다른 반 교사보다 선물을 더 많이 받으면 괜스레 기분이 우쭐해졌던 것도 같다. 젊은 날의 치기였으리라. 지금 생각해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학생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을 기대한다는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던 듯싶다. 뚜렷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선물을 받는 게 무언가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인지 2000년대 초반인지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담임 반 학생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해는 물론 그다음 해에도 학생들은 스승의 날에 선물을 가져왔다. 선생님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여, 2002년으로 기억하는데, 담임 반 학생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을 것이며 혹시 선물을 가져오면 그 선물은 그대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래도 선물을 가져온 몇몇 학생이 있어서, 말한 대로 그 선물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몇 년을 반복하니, 드디어 스승의 날에 선물을 가져오는 학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게 되어 좋았는데, 다른 교사들의 시선이 약간 거북했다. 물론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교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시절이다. '뭘 그리 혼자 독야청청? 그래, 네 팔뚝 굵다!' 대략 이런 느낌. 그렇다고 선물을 다시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꿋꿋하게, 씩씩하게 계속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았다. 뒤통수 따끔거리는 건 곧 만성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정말 가뭄에 단비가 내렸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생겼다. 바로 '김영란법'이다.

법 제정을 그렇게 반기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는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겠노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나 좋던지! 그때의 홀가분함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뻘쭘함과 민망함, 그 끝의 고마움

그러다 지금, 이 순간을 맞았다. 교직 생활 마지막 스승의 날.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행사가 없다. 꽃 달아 주는 행사를 하지 않으니, 뻘쭘함과 민망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그 얼마나 좋으랴.

한데, 4교시 수업. 부담임을 맡고 있는 반 수업이다. 교실 문을 열어 보니, 교실이 휑하다. 학생들이 온데간데없다. 부랴부랴 교무실로 돌아와서, 시간표가 바뀌었나 확인했다. 안 바뀌었다. 그대로다.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뒷문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면서.

뻘쭘함과 민망함이 밀려오지만, 막을 도리는 없다. 순간, 아이들의 노래에서 음정과 박자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와, 너희 정말 노래 못 부른다"라는 말로 뻘쭘함과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달랜다. 노래를 마친 아이들이 내게로 와서 색종이 꽃가루를 마구 뿌린다. 사진도 한 컷 찍자고 해서 찍었다.

이렇게 교직 생활 마지막 스승의 날이 지나가고 있다. 큰 잘못 없이 교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다. 학생들이 제멋대로라 교직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적어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학교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나직이 이야기해 본다. "얘들아,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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