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AI가 협업하는 ‘경남형 AI교실’ 가보니… “교육부와 담판의 산물”
국가교육과정 200만건 통째 데이터베이스화
박종훈 경남교육감 “이주호 부총리와 AI 논의 요망”
경남 창원시 남정초등학교 5학년 지훈이는 수학에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 섞여 있는 혼합계산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기본 개념은 수업시간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약간만 비틀어서 문제가 나오면 틀리기 일쑤였다. 지훈이는 인공지능(AI)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기본 개념을 다시 익혔다. AI는 지훈이에게 개념 이해를 돕는 동영상 몇 개를 추천하고 다시 문제를 풀도록 했다.
지훈이는 “10개 중에서 7개 문항은 내가 모르는 걸 (인공지능이) 추천했다. 문제들을 풀다 보니까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이끄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 과정을 선생님에게 확인을 받으며 개념을 다시 다져나가자 틀리는 문항이 확 줄었다. 지훈이는 각종 단위와 관련한 문항도 ‘수업→인공지능→교사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학습 과정을 통해 재미있게 공부했다고 했다.
교사와 AI가 협력하는 교실
지훈이는 지난 11일 이 학교 AI활용 과학 수업 뒤 인터뷰했다. 이날 공개 수업은 4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경남도교육청이 개발해 경남 전체 초·중·고교에 보급한 빅데이터 기반 AI학습 플랫폼 ‘아이톡톡’을 알리는 자리였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교사와 AI가 협력해 학생을 가르치는 초기 형태의 학생 맞춤형 교실의 모습”이라며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와 교사의 교육 활동 데이터가 더 축적되면 점점 더 정교한 학생 맞춤형 학습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학생들은 태양계 행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각 모둠(조)마다 행성을 조사해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모두 동일한 스마트 기기를 책상 위에 놓고 익숙하게 정보를 찾아 발표 자료를 구성하고 있었다. 노트북과 태블릿PC가 결합된 ‘복합기’였다. 경남교육청이 일괄 지급했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각자 스마트기기를 준비해오라고 하면 누구는 갤럭시탭, 어떤 아이는 아이패드, 또 다른 아이는 노트북을 준비해올 텐데 이러면 문제가 생겼을 때 교사가 즉각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기가 동일하면 옆의 아이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아이는 “4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좀 쓰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했다.
수업 도중 아이들은 AI와 빅데이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마치 유튜브 사용자가 유튜브에서 작동하는 AI를 인식하지 못하고 영상을 추천받아 시청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했다. 아이톡톡이 활용되는 수업에서는 교사의 수업 준비부터 학생의 학습 준비 활동, 퀴즈 등 곳곳에서 AI가 구동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할 경우 ‘집중해 주세요’란 메시지가 뜨기도 하고, 아이들이 퀴즈를 풀며 쓴 풀이과정이나 낙서 등이 고스란히 교사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돼 분석되는 방식이다.
과학 수업 뒤 취재진을 대상으로 아이톡톡이 활용된 수학 수업을 체험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AI가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구동되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AI는 6학년 1학기에 배우는 각기둥과 관련한 도형 문제 5개를 제시했다. 기자는 시간 내에 2개의 정답을 풀 수 있었다. 도형의 전개도에서 길이를 구하는 문항 등은 시간이 부족해 비슷한 숫자를 입력했지만, 오답 처리됐다.
채점 결과가 화면에 뜨고 아래 ‘틀린문제 개념학습’ 추천 영상 두 개가 떴다. 영상으로 공부를 하고 틀린 문항을 다시 풀어보거나 다른 문항을 추천받아 풀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또한, 교사에게 질문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아이톡톡, 점점 똑똑해질 것”
교사가 보는 화면에서는 AI가 아이들의 학습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기자들은 5개 문항 중 평균 2.43개를 맞힌 것으로 집계됐다. 기자들의 문항별 정·오답, 문항별로 머문 시간, 반복한 횟수 등이 정리됐다. 실제로는 단순히 AI가 낸 퀴즈의 정·오답만으로 학생을 분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각 수업별로 학생이 어떤 콘텐츠를 봤는지 등 종합적인 분석이 이뤄진다고 했다.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만 축적되는 게 아니었다. 교사들이 각 수업별로 학생에게 어떤 피드백을 줬는지 등도 아이톡톡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AI가 고도화되는 데 활용된다고 했다.
경남교육청은 2018년부터 AI와 빅데이터 기반 학습 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초·중·고교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내용 200만건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국가교육과정을 통째로 DB화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대한 작업으로 교사 600여명이 6개월 동안 매달렸다고 한다. 이 DB를 바탕으로 네이버와 협력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아이톡톡이란 이름의 AI 학습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 전체를 DB화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해놓은 게 사교육업체가 출시하고 있는 AI 학습 시스템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경남교육청은 강조한다. 수학 과목이라면 AI가 수학 교육과정 내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모든 교과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방정식을 풀지 못한다면 수학 교육과정 내에서 학습 결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해력에 문제가 있어 방정식을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아이톡톡은 수학과 과학, 국어, 철학 등 학생들이 공부할 내용이 유기적으로 DB화돼 있어 맞춤형 처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데 아이톡톡의 AI는 점점 똑똑해질 것”이라며 “2~3년만 더 데이터가 축적되면 거의 완벽한 형태의 서비스가 가능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교 취재가 끝난 뒤 박종훈 경남교육감으로부터 아이톡톡 개발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교육부와의 갈등을 비롯한 뒷얘기도 공개했다. 이하 문답.
-AI 학습 시스템을 추진한 배경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학생들의 개별성을 발현시켜 나가는 게 미래 교육의 화두였는데, AI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개별성 발현은 교사가 아이 한명 한명 관찰하고 평가해 개별성을 찾아야 하는데, 이 녀석(AI)을 활용하면 교사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봤다. 알아보니 가장 큰 문제는 AI는 데이터 축적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모으려면 가장 먼저 웹 브라우저가 있어야 했는데 교육청이 직접 개발하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네이버가 협력을 제안했다.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학습 데이터가 외국 업체로 넘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 진행하게 됐다.”
-전국 교육청 중 유일한데.
“(아이톡톡을 만들고 있었던) 2020년 가을 무렵 교육부와 좀 싸웠다. 당시 교육부가 2024년까지 (인공지능) 플랫폼을 개발해 보급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는 2021년부터 하려고 준비 다 하고 있었다. 저는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3선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간의 노력을 평가받고 지지를 받아 3선을 하고 싶었다. 물 밑에서 (당시 교육부와) 제법 싸웠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로 올라오라고 해서 못 간다고 했고 결국 중간인 대구에서 만났다(웃음). 물밑에서 합의된 게 ‘다른 교육청은 끌어들이지 말라. 경남 혼자 해라’였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가. 2024년에 만든다는 그 사업 지금 중단됐다.”
문재인정부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불가피해지자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면서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 환경과 AI 등 첨단 에듀테크를 학교 현장에 적극 적용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총사업비 6000억원 규모의 ‘디지털 교수·학습통합플랫폼’ 구축 사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뒤 사업을 중단시켰다. 대신 이 부총리는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2025년까지 개발하기로 했다.
-다른 교육청은.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사정을 잘 안다. 저는 이거(아이톡톡) 공유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특허 주장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했다. 그래서 1개월 전쯤 아이톡톡 개발을 주관했던 장학관을 교육감협의회에 파견했다. 지금 교육감협의회에서 다른 시도교육청하고 아이톡톡 공유 문제를 의논하고 있다. 이 부총리도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교과서와 플랫폼 개발, 데이터 관리 등을 교육부와 협의하고 있고 협력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AI를 통한 학생 개별성 발현’은 이 부총리가 하는 말과 비슷하다. AI의 교실 구축에 대해 이 부총리와 의논한 적 있는가.
“없다. 이 부총리께서 생각하는 것과 내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걸로 생각한다. 혹시 다르면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그래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여당 국회의원 한 분이 이 부총리를 창원에 모시고 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 부총리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부총리에게 공개 토론을 제의한다면 어떨까.
“저는 만나고 싶다. 혹시 우리가 가는 방향과 교육부의 방향이 달라 합쳐지지 못하면 과잉투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감협의회 차원의 플랫폼 사업과 교육부의 디지털교과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교섭을 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부총리님 생각과 제 생각을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만남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헛돈 쓰는 일(이 될 수 있다). 저도 조바심이 난다.”
교육부의 AI 기반 디지털교과서 어디까지 왔는가.
교육부도 디지털교육기획관이란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정책 연구를 진행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3월 초·중·고교에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AI 기술을 탑재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내용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지난 2월 발표했다. 지난 10일에는 교육감 보궐선거로 지원하지 못한 울산을 뺀 16개 시도교육청을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시범교육청’으로 지정했다. 시범교육청들은 이달까지 선도학교 300곳을 지정, 여름방학 기간에 교원 연수를 추진하고 하반기부터 AI 활용 교육과정을 시범 도입한다.
창원=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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