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별 근로계약으로 도입 불가"

최석진 2023. 5. 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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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요건 따라야 유효"
단위기간 2주 이내일 때 취업규칙에서 정해야
단위기간 3개월 미만은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
서울 서초동 대법원.

밤새 돌아가는 공항 등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조별 야간근로 등 탄력근로 조건은 반드시 취업규칙을 통해서 정식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개별 근로자와 작성하는 근로계약서에 쓰거나, 다른 방식으로 동의받는 것은 무효라는 판단이다.

야근조 등을 2주 이상 단위로 편성해서 운영하려면 근로자 대표와 사측의 서면 합의 등이 필요하다. 이번 판시는 2주 이하인 경우에는 취업규칙을 통해 공식화하라는 것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근로기준법 위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청소용역업체 대표 A씨의 상고심에서 A 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의 판단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유효 요건,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의 구별 및 임금 미지급에 대한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상시근로자가 400명 이상인 항공기 기내청소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재직 중 혹은 퇴직한 직원에게 5200만원 정도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여성 근로자 124명에게 남성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정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는 A씨가 직원들에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로 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와 임금에서의 차별을 합리화할 정도로 남녀 근로자 간에 업무 차이가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맺은 근로계약서를 통해 2주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으므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록 근로계약서에 근무시간 연장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해도, 법이 정한 것처럼 취업규칙에 규정돼 있지 않다면 효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제51조 1항에서 정한 '2주 이내를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취업규칙으로 단위기간의 시작일과 종료일, 단위기간 내 각 근로일의 근로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고, 근로기준법 제51조 2항의 '3개월 이내를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정하지 않으면 근로시간제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개별 근로계약서에 '주 40시간의 범위 내에서 공항업무의 특수성을 감안 근무편성표에 의거 변형근로를 실시한다'는 규정이 있더라도, 그러한 개별 근로계약서만으로 취업규칙에 준하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A씨가 여객기 청소업무라는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는 여성 근로자에게 남성 근로자와 달리 출근 성적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정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남성 근로자가 무거운 물건을 처리하는 등 작업 조건의 측면에서 양적 또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 벌금액을 500만원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서에 탄력적 근로에 관한 근로조건이 공통적으로 기재돼 있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됐다고 볼 수 있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A씨가 근로계약서를 통해 장기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해 오는 동안 근로자들의 이의제기가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1주간 및 1일의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해 소정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서 법률에 규정된 일정한 요건과 범위 내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이므로 법률에서 정한 방식, 즉 취업규칙에 의하여만 도입이 가능할 뿐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를 통하여 도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회사 내에 별도의 취업규칙이 존재하는 만큼, 2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이 사건 근로계약서가 실질적으로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주 이내를 단위 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더라도 도입할 수 없고 취업규칙으로만 도입할 수 있다고 최초로 판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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