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의 진심 합심] 매달 첫 경기가 개막전? 트윈스의 프레시 스타트 전략
차승윤 2023. 5. 15. 08:37
2012년 구글이 한창 잘 나갑니다. 그해 처음으로 매출액이 500억 달러를 돌파합니다. 그런 구글이 당시 몇몇 경제학자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의 본사로 초대합니다. 학자들을 모은 구글의 인사담당 부사장 프라사드 세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는 직원들의 삶과 업무를 동시에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회사 내 여러 운동시설도 갖췄습니다. 흡연, 건강에 해로운 식생활 등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과정도 만들었고요. 여기에 회사 돈을 많이 들였는데 직원들 참여도가 너무 낮아요." 그는 또 "홍보가 안됐고, 직원들이 너무 바빠 참여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직원들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안하려면 언제가 좋은 타이밍일까요?"라고 묻습니다.
초청된 학자 중 케이티 밀크먼(Katy Milkman)이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 교수로, 행동과학 전문가입니다. 행동과학은 합리적 선택이란 고전 경제학의 믿음을 깨고, 인간의 비합리성과 편향(bias)으로 기울어진 현실 인간의 심리에 주목합니다. 이를 역이용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돕는 학문입니다. 밀크먼은 좋은 루틴을 설계하는 디테일에 강합니다. 뒤집으면 그의 연구는 '나쁜 습관'을 깨뜨리는 데도 유용합니다. 밀크먼은 구글에 직원들의 습관 설계의 방법으로, 새로운 시점을 잡는 방법 등을 제안합니다.
개념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이어트나 학원 등록, 금연 등 일상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세요? 생일이나 새로운 한 달의 첫날, 연휴 이후, 학기 초, 새해 첫날에 맞추지 않나요? 이사나 직장을 옮기고, 부서를 바꿀 때 결심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지금껏 해온 것과 작별하고 백지에서 새 출발하겠다는 마음을 시점과 연결시킵니다. 자신의 마음에 새로운 달력이 만들어 집니다. 심리적 재도전의 기회를 특정 시점과 결합, 과거와 단절하는 시도라고 밀크먼은 설명합니다. '새로운 시작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부릅니다.
좋은 타이밍에 맞춰 새로 시작하는 것과 관련, 최근에 읽은 야구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의 말입니다. "매달 시작하는 경기가 개막전이라고 생각하자, 다음 달이면 승패가 초기화되고, 다시 개막전 치른다고 생각하자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염 감독님은 밀크먼이 구글에 제시한 '새로운 시작효과'를 오랜 현장경험으로 체득한 것 같습니다. 7개월여 144경기라는 시즌의 긴 항해를 견디기 위해 한달 단위로 목표를 나누고, 그 한달의 첫 경기를 '개막전'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염 감독의 의도는 행동과학에서 제시하는 전략적인 목표 설계(이름 붙이기, 신호기반 계획짜기 등)와 유사합니다. 전략가 답습니다.
매달 첫 경기를 그냥 '00월의 첫날'이 아니라 개막전으로 이름 붙인 것은 초심으로 찾고, 동기부여와 분위기 전환을 두루 의도한 시도로 읽힙니다. 가령 여러분이 수영을 시작했다면 '수영 1일차'라고 하지 않고 '돌고래 수영 1일차'라고 규정하면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돌고래 같은 몸매와 웨이브 실력을 떠올리며 목표의식을 자극하는 것이 네이밍(naming)의 힘이자, 넛지(nudge)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생각, 목표, 교육, 지시만으론 구성원 대부분의 행동 변화가 지속되긴 어렵습니다. 멤버의 다양한 패턴, 여러 변수를 분석해 구성원의 도움과 협력을 끌어낼 제도, 장치를 마련하라는 것도 행동과학의 조언입니다.
지난달 부진한 선수를 새 달에 맞춰 리셋시키는 평가, 보상책을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가 있던 팀에서 2013년 창단 첫 시즌, 첫 한 달의 악몽(4승17패)을 반전시킬 때 효과를 봤습니다. 그러나 구성원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제도의 설계는 조심스럽습니다. 손해가 생기는 누군가는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손실회피 성향, 이 역시 행동과학에서 깊이 연구하는 주제입니다.
야구에선 타자가 희생번트를 해도 타율의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다른 선택의 기회가 희생되어도 야구규칙 덕분에 기록의 희생까지 강요되진 않습니다. 제도가 야구의 팀 플레이 정신을 챙깁니다.
매달 첫 경기가 개막전이 되는 트윈스의 시도에 주목합니다. 어떻게 디자인했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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