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후쿠시마, 들러리 서는데 왜 가려는 걸까

이충재 2023. 5. 1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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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관계 개선 걸림돌 돼선 안 된다는 입장 강해

<이충재의 인사이트>(https://chungjae.com)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충재 기자는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충재 기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내 방사성 오염수 저장 탱크.
ⓒ 연합뉴스
 
정부의 후쿠시마 시찰단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 '견학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파견 취소 주장이 나옵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데다 우리 정부도 '검증'이 아닌 '현장 확인'이라고 시찰단 성격을 밝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 시료를 직접 채취해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줄 게 뻔한 상황에서 굳이 정부가 시찰단을 보내는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외교가에선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대일 관계 개선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로 시작된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접근법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입니다. 그간 대통령실에선 오염수 문제에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후 일본 언론에서 윤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사실 확인 대신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만 밝혀 의문을 남겼습니다.

한국 시찰단, 후쿠시마 오염수 안정성에 힘 실어주나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정상회의와 연관짓는 시각도 있습니다. 의장국인 일본은 G7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증을 받으려 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 G7에 초대돼 다시 한 번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안정성에 힘을 실어주려 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국 시찰단 방문이 G7 개최 직후 이뤄지는 점도 공교롭습니다.

이런 기류는 정부와 여당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발 오염수에 대해 "오염 처리수라고 쓰는 게 맞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정부도 부인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부적으로 원전 오염수라는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이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현재 IAEA가 시료 채취와 분석을 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또 시료 채취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제기구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한 것도 정부 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시찰단에 민간 전문가가 배제된 것도 석연치 않다는 게 과학계의 지적입니다. 정부는 "일본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민간 전문가 참여가 어렵다고 밝혔는데 애초 우리 정부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관변이 아닌 핵과 해양환경 민간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시찰단에는 원자력산업에 우호적인 정부관련 기관 및 산하기관의 전문가들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명단도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 입김 아래 있는 이들이 어떤 입장을 낼지는 자명합니다.  

과학계에서는 한국에 앞서 시찰에 나섰던 대만과 태평양도서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시찰단 무용론을 제기합니다. 대만은 지난해 3월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찰단을 파견했는데,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와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는 K4 탱크, 해저터널 공사 현장 등만 보고 왔다고 합니다. 시료 채취 등 검증은 전혀 하지 못했고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는 겁니다.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사무국도 지난 2월 시찰단을 파견했지만 일정은 대만 시찰단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한국 시찰단도 결국 도쿄전력이 보여주는 것과 제공하는 정보를 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지적입니다.  

정부 시찰단의 검증이 불가능한 현실은 윤 대통령이 말한 것과도 다릅니다.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시찰단 파견은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있는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일 간 실무협의에서 확인된 사실은 과학에 기반한 검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측은 아예 '협의'가 아닌 '설명회'라고 밝혔습니다. 시찰단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안전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일본 내에서도 여전히 반발에 부딪쳐 있습니다. 일본원자력문화재단이 지난달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류와 관련해 '국민 이해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1.9%, '어업 관계자 이해를 얻을 때까지 방류를 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42.3%로 집계됐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 시민들의 건강, 바다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엄중한 사안입니다. 많은 국민은 한국 시찰단이 면죄부를 주면 그 다음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허가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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