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둠스데이 시나리오 닥친다" 美 디폴트 경고
미국 연방정부가 자칫 부채한도 상향에 실패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경우 증시 폭락, 연방 근로자들의 일시 해고부터 글로벌 금융시스템 여파까지 즉각 '7가지 둠스데이(doomsday, 심판의 날) 시나리오'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이후 이어질 혼란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 전 세계 경제에 더 큰 불확실성이 될 것이란 진단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경제학자들이 연방정부의 현금이 바닥나는 이른바 X-데이까지 부채한도를 상향하지 못할 경우 닥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1월 31조4000억달러 규모의 부채한도를 모두 소진했고, 현재 특별조치로 버티고 있으나 이 또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7가지 둠스데이 시나리오는 증시 폭락, 갑작스러운 불황, 실업, 사회보장연금 및 메디케어 지급난, 미국의 차입비용 급증, 미 국채를 보유한 세계 각국으로 경제 여파 확산, 달러화 위상 약화 등이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치명적 조합이 될 것"이라며 "이 문제가 어떻게 전이돼 전체 금융시장을 무너뜨리고 궁극적으로 경제에까지 이어질지 볼수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 곳은 월스트리트로 꼽혔다. 아직까지 부채한도 리스크가 주가에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기는 하나, X-데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증시는 폭락하고 은행부문은 긴축될 것이란 진단이다. 과거 부채한도를 둘러싼 의회 대치가 극에 달했던 2011년 당시에도 X-데이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고 주요지수는 약 20% 하락했다고 WP는 보도했다.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제시한 X-데이는 6월1일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디폴트 발생 시 주가가 약 5분의1로 급락하고 수백만명 규모의 미국인들의 은퇴 계좌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3개월 이상 디폴트가 장기화될 경우 증시가 45% 폭락하고 일자리는 최대 830만개 사라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미 1년 이상 이어진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으로 침체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경제 전반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 WP는 "월가의 매도세로 인해 전국적으로 가계자산은 감소할 것"이라며 "이는 소비 지출을 줄이고 기업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짚었다. 재무부에 따르면 2011년 부채한도 대치 상황으로 인해 총 가계자산은 2조4000억달러 감소한 것으로 집계된다.
또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치솟으면서 부동산 시장 역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부동산 회사 질로우는 보고서를 통해 부채한도가 상향되지 않을 경우 모기지 금리가 8.4%까지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로 인해 매달 대출 원리금 상환 비용은 22%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주택 판매 급감 등으로 건설업 등 다른 연관 분야에까지도 악영향을 미쳐 전체적인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전망이다.
연방 근로자들의 일시 해고 또는 급여 미지급 사태도 우려된다.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연방정부에 고용된 근로자는 약 420만명 규모다. WP는 미군 외에도 식품 안전, 항공 교통 관제사 등 주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디폴트 여파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은퇴자들을 위한 연금이나 메디케어, 사회보장 지출도 일시 중단된다. 이러한 상황이 경기 침체를 한층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들로 손꼽힌다.
초유의 디폴트 사태는 미국의 차입비용도 끌어올릴 전망이다. 그간 미 국채는 국제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가장 안전한 기반 채권으로 평가받아왔지만, 디폴트 시 세계적인 변동성, 불확실성 속에 가격 급락이 불가피하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부채한도를 넘어설 경우 향후 10년간 연방 차입비용이 7500억달러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WP는 "미국이 수십년간 누려왔던 차입 할인이 끝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 문제를 한층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전 세계 다수의 국가들이 가장 안전한 기반 채권인 미 국채를 대량 매입해 재정을 보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을 둘러싼 신뢰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에서 미국 달러화의 입지도 손상될 것으로 전망됐다. WP는 "이미 세계 경제는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했다"면서 "외환 거래의 약 60%가 여전히 달러로 이뤄지지만, 디폴트로 인해 달러 가치는 휘청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옐런 장관 역시 "미국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신용도에도 의문이 생길 것"이라며 더 근본적인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었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디폴트에 따른 다음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경고했다. Fed 출신인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삼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면서 "걱정되는 것은 X-데이 하루 후인 X+1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나도, 그 누구도 밑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과 의회는 현재 디폴트를 막기 위한 부채한도 협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주 초에는 앞서 연기된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 간 2차 회동도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주 1차 회동에서는 입장차만 확인했다.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부채한도 상향에 반대하는 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부채한도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며 조건 없는 상향을 요구 중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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