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향기 좋은 꽃 피는데 왜 ‘때죽나무’라 부를까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5월이 되면 숲은 초록으로 물들죠. 지난달에 돋아났던 이파리들이 더 커지고 색도 진해져서 그야말로 ‘신록(新綠)’의 계절이 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주로 흰 빛깔의 꽃들이 줄지어 피어나죠. 아까시나무·이팝나무·조팝나무·팥배나무·산딸기·국수나무·일본목련 등인데요. 푸르른 신록의 계절에는 햇빛이 숲 바닥까지 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숲이 어두워지다 보니 눈에 띄려면 밝은 색깔이 좋죠. 이맘때 피는 여러 꽃 중에 이번에는 때죽나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때죽나무라니, 이름이 조금 낯설지요? 하지만 공원이나 낮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랍니다.
때죽나무는 수피(나무껍질)가 매끈하고 나무를 잘랐을 때 속도 흰빛에 가까운 밝은색을 띠고 있어서 목공예를 할 때 많이 사용하는 나무이기도 해요. 5월이 되면 눈처럼 하얗고 종 같은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데, 그 색깔과 모양 때문인지 영어로는 ‘스노벨(snowbell)’이라고 합니다. 때죽나무의 학명은 ‘Styrax japonicus Siebold & Zucc.’라고 해요. 여기서 속명인 ‘Styrax’는 그리스어 ‘Storax’에서 유래되었는데 뜻은 ‘안식향’ 혹은 ‘안식향을 얻을 수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안식향은 향료의 일종으로, 안식향나무(Styrax benzoin Dryander) 또는 백화수(Styrax tonkinensis Craib ex Hart.) 같은 때죽나무과(Styracaceae)의 수액을 추출·건조해 만들죠. 안식향(安息香)은 향기가 높고 모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낸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벤조인(benzoin)이라고 해요.
때죽나무는 재미난 이름을 가져서인지 이름의 유래도 여러 가지입니다. 껍질을 문지르면 때가 죽죽 나온다고 해서 때죽나무라고 한다는 설도 있고, 하얀 열매가 익어 동그랗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동자승들이 여럿이 모여있는 듯하다 해서 ‘떼중나무’라고 불리다때죽이 되었다고도 하죠. 또 열매를 돌로 빻아서 냇가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떼로 죽는다고 해서 떼죽이라 불리다가 때죽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중국에서는 좋은 향기 때문인지 때죽나무를 ‘야말리(野茉莉)’라고 부릅니다. 말리꽃은 중국에서 ‘자스민’을 부르는 이름이죠. 일본에서는 때죽나무를 에고노키(エゴノキ)라고 해요. 때죽나무 열매를 먹을 경우 혀나 목이 매우 아린 맛이 나는데, 일본어로 아린다는 뜻의 ‘에구이(エグイ)’를 따서 에고노키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네요. 아린 맛을 나게 하는 성분을 ‘에고사포닌(egosaponin)’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에고’가 바로 에고노키에서 따온 말입니다. 사포닌이란 성분은 물에 녹으면 비누처럼 거품을 내는 성분이니 어찌 보면 때가 죽죽 나온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설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때죽나무는 꽃이 희고 아름다운데 아래를 향해서 피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향이 너무 좋아서 그 곁을 지나다 보면 향기에 취하게 되곤 하죠. ‘이 향으로 향수를 만들면 좋겠다’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향수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꽃향기가 좋으면 여기저기서 수많은 곤충이 몰려올 것 같죠. 특히 벌들이 주로 때죽나무를 찾아옵니다. 꽃이 아래로 향해 있기 때문에 매달리기에 능한 벌들이 주로 찾아오는 거죠.
이왕이면 여러 곤충이 찾아오면 꽃가루받이를 하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 때죽나무는 왜 굳이 벌이라는 곤충에 한정을 짓는 작전을 쓰는 걸까요? 어느 특정한 곤충이 찾아오는 것도 사실은 꽃가루받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벌들은 여러 꽃을 방문하며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데 어느 꽃을 방문했다가 다른 종의 꽃에 방문한다고 해서 꽃가루받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종류의 꽃에 앉아야 꽃가루받이가 이뤄지죠. 때로는 편식을 하는 것이 꽃가루받이엔 더 도움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희망봉용담’이라는 꽃은 편식의 정점에 있는 식물인데요. 평소엔 꽃잎을 닫고 있다가 특정한 뒤영벌이 꽃 앞에서 날갯짓하면 날갯짓의 진동수에 맞춰 꽃잎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 뒤영벌은 꿀을 모은 뒤 또 다른 희망봉용담을 찾아가겠지요? 그러니 꽃가루받이가 될 확률이 거의 100%에 이릅니다. 한 꽃에 다양한 곤충이 여러 개체가 오는 것이 유리하기도 하고, 특정한 종이 오는 것이 유리하기도 합니다. 자연에서는 어느 한 가지 길만 유리하지 않죠. 요즘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직업을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요. 그러기보다는 내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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